[김현아] 단풍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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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올해는 아침저녁 기온 차가 매우 커서 단풍이 예년에 없이 더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빨간 단풍나무 잎 사이로 햇빛이 비칠 때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선명한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가 끝없이 늘어선 가로수 길의 풍경은 감탄 없이 볼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얀 꽃이 설레는 무연한 억세 밭도 장관입니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남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해서 한라산에서 마무리 합니다. 올해는 11월 1일이 제주도 한라산 단풍의 절정기라고 합니다. 단풍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기간은 보름 정도라 단풍이 지기 전에 가을을 즐기고 마음에 담아두고자 요즈음 사람들은 너도나도 단풍구경을 떠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도로가 미어지게 승용차가 늘어서고 산과 가로수 길에는 인파가 넘쳐납니다. 이런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동두천시 소요단풍문화제, 장성백양단풍축제, 서울 억새 축제, 익산 천만송이 국화 축제, 마산 가고파 국화 축제, 순천만 갈대 축제 등 곳곳에서 가을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너무 바빠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가까운 곳으로 갑니다. 시골은 말할 것 없고 대도시인 서울 주변의 산이나 아파트 주변, 도로의 나무들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가을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북한도 단풍이 물듭니다. 단풍 든 금강산의 경치는 예로부터 소문이 나있고 구월산, 칠보산, 묘향산 등 이름난 산들의 단풍은 모두 멋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주민은 단풍구경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풍구경은 혁명적인 생활과 거리가 먼 부르주아적 냄새가 나는 행위로 생각합니다. 단풍구경 꽃놀이 같은 것은 소설에서나 나오는 장면이었고, 주로 인민들을 착취한 대가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계급적 원수에 대한 분노를 유발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남한처럼 차를 타고 먼 곳으로 구경 갈 수는 없지만 산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주변 산들의 단풍구경을 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가까운 산은 모두 헐벗어서 단풍이 질 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갈 수 있다고 해도 산으로 구경 가자는 말은 오히려 실례로 됩니다. 북한주민에게 산이란 아름다움을 느끼고 생활을 즐기는 명소가 아닙니다. 아사를 극복하기 위해, 외화벌이를 위해 산나물 약초 버섯을 뜯거나 땔나무를 마련하려고 다니는 산은 처절한 생존경쟁을 위해 자연과 사투를 벌려야 하는 전쟁터입니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북한에서 창작한 가극 "꽃 파는 처녀"에는 철학적 깊이가 있다고 자랑하는 달구경 장면이 있습니다. 하늘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면서 부자 집 여인들은 즐기느라 떠들썩한데 감옥에 갇힌 오빠를 찾아 먼 길을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배고픔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주인공 꽃분이의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그 장면이 나올 때 '어떤 사람 달을 보며 즐거워하고 어떤 사람 달을 보며 서러워하네.' 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남북주민들의 가을에 대한 서로 다른 느낌이 바로 그 장면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북한지도부는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안겨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를 위해 평양에 현대적 아파트도 일떠세웠습니다. 그리고 물놀이장, 스케이트장, 승마장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는 사람도, 그 곳을 즐기는 사람도 극소수입니다. 북한주민들도 남한주민들처럼 너도나도 단풍구경을 하려고 산으로 들로 거리로 떨쳐나서는 그 때가 정말 부귀영화를 누리는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