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올해도 새해 ‘첫 전투’로 거름생산과제가 부과되었습니다. 부양가족은 인분 7백kg 또는 퇴비 2톤, 직장인은 인분 1톤 또는 퇴비 3톤을 2월 16일까지 바쳐야 합니다. 도시에서 사는 주민이 가장 추운 겨울에 인분이나 퇴비를 생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성인 당 1톤 이상 생산은 원천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협동농장에 가서 관리간부들에게 술이나 물건을 뇌물로 주고 퇴비 확인증명서를 떼다 바치는가 하면 퇴비 확인서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 나라 주민들을 다 동원하지만 주민들이 바친 돈과 노력에 비해 논밭에 나간 퇴비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퇴비증명서의 상당부분은 담당 관리들이 술이나 담배를 받고 떼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논밭이 거름이 아니라 술과 담배를 먹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렸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퇴비 확인서의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도시주민의 거름생산은 1980년 중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경제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비료를 보장하지 못하게 되자 대신 인분가루를 생산해서 치라는 지시가 내려져 주민들이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임시방편으로 나왔던 퇴비생산운동이 없어지기는커녕 생산과제가 나날이 늘었고 30여 년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곡생산을 늘이려면 땅의 지력을 높여야 하며 그러자면 비료, 특히 퇴비가 필요합니다. 최근 들어 환경 친화적인 농업,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법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퇴비를 도시에서 수공업적방법으로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퇴비생산을 늘리려면 축산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남한은 돼지공장이나 소사육장, 닭 공장에서 나오는 퇴비가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논밭에 다 깔고도 남아서 그냥 버리기 때문에 환경오염이 문제로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좋을 때 남한에서는 우리가 현지까지 날라다주겠으니 퇴비를 받아달라고 제의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북한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축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방침이 나온 지 오래지만 축산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축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사료가 있어야 하는데 주민들의 식량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짐승까지 먹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퇴비가 없어 땅이 산성화되고 땅의 지력이 낮아져 수확고가 낮아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논밭도 많지 않고 기후도 농사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농업보다는 공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공업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료를 사서 축산을 발전시키고 거기에서 나오는 퇴비로 땅의 지력을 높여 농업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당면하게는 농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지도부는 농업에 대한 투자 대신 주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거름생산뿐 아니라 모내기 가을추수 때는 도시의 노동자 사무원 학생, 군인들을 농사일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풀베기과제까지 내려 먹이고 있습니다.
남한의 도시사람들은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가족과 함께 농촌을 찾아가서 하는 체험놀이가 인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주민이 해마다 새해에 가장 많이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결의 1등은 다이어트, 즉 어떻게 하면 적게 먹고 몸무게를 줄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농사가 잘 안 되는 것은 주민이 아니라 지도부의 잘못된 정책에 있습니다. 농업생산을 늘리려면 주민들에게 농사를 떠맡기는 체계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 선전용 건설이 아니라 농업과 공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핵이 없어도 지도부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