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만남의 권리

0:00 / 0:00

2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한다는 보도가 났습니다. 북한은 남한이 군사훈련을 계속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고려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을 예정대로 교환했습니다.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자는 남북 각각 85명, 94명입니다. 이번 상봉이 무산될까 가슴 조이던 예정자들은 다행이라 가슴을 내려쓸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전후에 김일성주석의 참가 하에 사회안전성 간부들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주민들 속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가하는 질문에 한 간부가 일어나서 대답했습니다. 그는 월남자 가족이 남한에 간 가족들을 잊지 못하고 몹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간부들에게 가족 친척이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인간의 감정이다. 우리가 지금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것도 나아가 조국을 통일하고 하루빨리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서다. 하면서 그것을 문제로 삼는 간부들을 질책했습니다. 회의에 참가했던 간부들은 수령님의 하해 같은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60년대만 해도 북한은 남한에 주동적으로 공세를 취했습니다. 남한에 쌀과 천을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남북이 교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4.19인민봉기 때 남쪽 대학생들이 외쳤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에 북한은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섰습니다.

세월은 흘러 영원할 것 같던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동서 냉전이 해체되었습니다. 지난날 철의 장벽이라 불리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독일이 통일되었습니다. 소련에서는 수십만 명의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동했습니다. 지난날 우리와 비슷했던 중국과 대만사이의 경계도 많이 무너져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정부도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적십자사에 이산가족상봉센터를 만들고 북한의 가족친척들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등록하고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북한에 적극적으로 요구해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월남자가족을 걱정했던 북한의 입장은 달라졌습니다. 북한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남북의 상황이 역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과 달리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남한에 정치적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물이 묻어올 것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산가족의 처지도 변했습니다. 이전에 남한에 친척이 있다고 하면 성분이 나빠서 출세할 수 없었고 결혼하는데도 지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북한주민들은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남한친척을 잘 두어서 팔자가 폈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북한정부는 대북지원을 받거나 정치적인 어떤 결과가 있을 때만 적당하게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할 주민들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엄선해서 허락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가족 친척이 만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권리입니다. 지난시기 한반도에서는 이 권리가 집권세력의 이해관계 때문에 침해되어 왔습니다. 만남의 권리를 시민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