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명절 연휴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설에도 남쪽 주민들은 차례제를 지내고, 윗사람에게 세배를 하고, 설음식도 나눠 먹으며 즐겁게 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설날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남쪽에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병명이 있습니다. 명절을 쇠면서 평상시와 다른 환경에 부딪히게 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겪게 되는 만성적인 피로를 한마디로 표현한 병 이름입니다.
평소에 단일가족으로 크게 가정일의 부담을 갖지 않고 살던 여성들이 명절날 많은 친척들이 북적이는 속에서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등 부담이 늘다보니 성차별에 대해 새삼스럽게 분노하게 되고 많은 친척들과 맞닥트리면서 갈등을 느끼다보면 소화가 잘 안되고 정신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향을 찾으려고 차들이 꽉 막힌 도로에서 장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피로가 쌓이고 친척들과 밤을 새우며 술을 마시다보면 체중이 불고 거기다 아내와 부모사이에 끼어 조절을 하다보면 역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설 명절에도 텔레비전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명절증후군을 지혜롭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특별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 남자들이 부엌일을 함께 해야 하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되는 말을 피하며, 장시간 차를 모는데서 오는 피로를 피하기 위해 간간히 휴식을 해야 한다고 처방을 내려주었습니다. 또 살이 찌는 것을 막기 위해 기름을 덜 쓰고 맛이 있으면서도 칼로리는 적은 재료로 명절음식을 차리라고 합니다. 특히 이번 설 명절은 예년에 없는 추위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 특히 차의 기관이 얼지 않게 미리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이번 설을 맞으며 여성들이 수고가 많았을 것입니다. 밤을 새우며 줄을 서서 떡가루를 내고 새벽부터 일어나 떡을 만들고 음식을 만드느라고 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친척들, 남편 친구들을 치르느라 편히 앉아볼 사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뜨뜻한 방안에서 더운물 찬물이 하루 종일 나오고, 정전이란 상상조차 못하는 조건에서 반 가공된 재료를 가지고 가스 곤로, 전기 곤로로 음식을 하는 남한여성들에 비하면 북한여성들의 가사일 부담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러나 북한여성들의 가장 큰 부담은 가사일로 인한 부담이 아니라 밥상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걱정이었을 것입니다. 쌀값이 떨어질 줄 모르는데다 벌이는 시원치 않아 하루 세끼 식구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도 힘든데 명절까지 쇠자니 그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양력설도 3일이나 쇠었는데 음력설이 3일 휴식이었고, 이제 2월 16일이 또 있으니 정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마음대로 먹고 마시지 못한 남자들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알 수 없는 울분만 끓어오릅니다.
결국 공식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지만 북한에도 명절증후군이 있습니다. 남과 북의 주민들이 다같이 겪는 명절증후군이지만 그 원인은 정 반대입니다. 남한은 남아서 오는 증후군이요 북한은 부족으로부터 오는 증후군입니다.
남한은 명절증후군이란 병명도 만들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북한은 병명조차 없을뿐더러 신문 방송에서는 명절을 맞는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족으로부터 오는 명절증후군과 남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명절 증후군, 어느 것이 더 아플까?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