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천연바위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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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통신은 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회 생일을 앞두고 평안남도 증산군 석다산에 있는 천연바위에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주체 101년 2월 16일' 이라는 글발을 새겼다고 전했습니다. 이 글발은 전체길이가 무려 120m나 되며 이름 글자는 높이가 10m, 너비가 5.5m, 깊이가 1.4m가 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1972년부터 이름난 산의 바위마다 글을 새기는 사업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을 비롯하여 전국 390여 개소에 2만여 글자를 새겨놓았습니다. 특히 갖가지 기묘한 바위가 많기로 이름난 금강산에는 삼일포, 만물상 등의 절경과 내금강 만폭동의 오선봉, 외금강 구룡연의 옥녀봉, 금강산 온정리 매바위산 등 70여 개소에 4,500여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천연바위에 글을 새기는 것을 수령의 위대성과 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한 의의 있는 사업으로 평가하고 오늘까지도 장려하고 있지만 바깥에서 볼 때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일 뿐입니다.

금강산을 관광한 남한의 한 청년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붉은 글씨로 새긴 바위를 보고 "저 바위를 직접 보았을 때, 난 바위가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글자가 새겨진 곳 주변의 하얀 부분이 눈물자국으로, 붉은 글씨가 핏방울처럼 보이는 정말 고약한 낙서다. 위의 노래대로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피어린 자욱'이다"라는 글을 인터네트에 올렸습니다. 또한 한 주민은 "저렇게 굵고 깊게 바위에다 선명하게, 자연유산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북한의 산들은 바위 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이름난 문인들은 명산을 유람하며 자기 이름을 새기곤 했습니다. 이를 질책하여 한 유학자는 "대장부의 이름은 사관(史官)이 책에 기록해 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지, 돌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날아다니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18세기, 19세기도 아닌 21세기에 개인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천연바위마다 대형문자로 어지럽히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대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우리가 아니라 후대들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나 이조실록을 편찬할 때 왕이 사망하고, 왕을 추종하던 신하들이 다 죽은 다음에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역사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 후대들이 자연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면서 어떤 평가를 할까? 수많은 명산의 아름다운 바위를 어지럽히며 크고 깊게 새겨진 흔적들은 우리의 후대들이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진면모를 별로 고민하지 않고도 생생하게 재현하고 평가할 수 있는 유력한 물증으로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슴에 사람들이 도려낸 깊은 상처를 안고 앞으로도 수수천년 이 땅에 서 있을 바위에게 우리는 이런 말밖에 남길 것이 없습니다. "천연바위야 정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