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담은 사진이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습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북한 집단체조의 장면을 찍은 두 점의 사진인데 예상 추정가는 70만∼90만 파운드(100~103만 달러)라고 합니다. 그가 역시 아리랑을 찍은 '평양 Ⅳ'이라는 사진작품은 2010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 달러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구르스키가 이번에 내놓은 사진은 공연장면을 관중석에서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조망하듯 찍은 것입니다. 한쪽 측면에는 남산의 푸른 소나무와 지원이라는 글이 있고 다른 쪽에는 붉은 깃발 위에 권총이 새겨진 그림을 배경으로 운동장에는 출연자들이 질서정연하게 평행사변형의 구도를 형성한 장면과 운동장 출연자들의 모습은 같지만 배경만 바뀌어 푸른 하늘로 비둘기가 나는 장면을 찍은 것입니다. 이미 200만 달러 넘게 받고 팔린 사진은 아리랑의 종장으로, 공연에 참가했던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 꽃다발을 흔드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북한주민의 시각에서 보면 그저 집단체조의 한 장면을 찍은 것일 뿐입니다. 그런 사진에 100만~200만 달러의 가격이 매겨진다는 것은 북한사람들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높은 가격이 매겨졌을까? 그의 작품은 원거리에서 전경을 조망한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뒤 한데 합쳐, 마치 신이 지상을 내려다보듯 모든 부분에 초점이 맞아 세세하게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 장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큼직하게 인화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동시에 개미처럼 작은 사물과 사람을 소유한 듯 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이번 작품 역시 한 면이 각각 2미터씩 되는 대형작품으로, 작품에 담긴 사람 하나하나가 작지만 선명하게 나타나 종합적으로 아름답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 기계처럼 정렬되어 있어 규율 질서를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집단체조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십여 만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하나와 같이 움직이면서 아름답고 장엄한 화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세계에서 북한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이 집단체조를 보면서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 분망한 예술가는 십여만 명이 동원되는 집단체조를 보면서 규모의 거대함이나 율동의 아름다움, 조직되고 단결력 있는 북한사람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강요된 질서와 규율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자유가 없는 북한사람들의 얽매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히틀러통치를 겪은 독일 사람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이 이러한 작품창작의 기초로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작가뿐 아니라 그의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작품에 높은 가격을 매겼습니다.
문득 북한에서 보았던 한 미술작품이 생각납니다. 사망한 김일성 주석을 추모하기 위하여 수많은 군중이 만수대 동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린, 강한 인상을 주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작품을 국제미술시장에 내놓으면 정말 높은 값을 받지 않을까? 철저히 세뇌되어 개인을 신처럼 받드는, 넋 없는 인간들의 군상을 그처럼 적나라하게 표현한 그림을 바깥세상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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