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피살사건으로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북한정부는 차마 노동신문에는 낼 수 없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한이 말레이시아 정부와 짜고 북한공민을 살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가 더 진척되면 사건진면모가 더 명백히 밝혀지겠지만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데 대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여자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에 지도자의 권위에 손상이 가는 것을 경계해서 가족관계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습니다. 이번 살해된 김정남은 북한의 영화배우였던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본 아들로 김정일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김정일은 후에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인 고영희와 살림을 차렸고 그와의 사이에서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정식 결혼시킨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난 딸은 김설송입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맏아들이었지만 아버지가 고영희한테 빠지자 버림을 받고 해외에서 떠돌았습니다.
김정남 살해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추측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김정남이 김정은의 정치적 적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에 와서 정권유지를 위해 적수를 죽이는 것은 너무나 큰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오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독재국가에서는 지금도 이러한 사건이 가끔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것은 김정남이 김정은의 형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위해 혈육을 살해하는 것은 봉건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비화로 현대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려왕국을 제거하고 이조 왕국을 세운 후 이성계의 셋째 아들이었던 이방원은 이성계가 후처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 불만스러워 이복동생들을 다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인 이성계도 아들에게 밀려나야 했습니다. 이방원은 자기의 형제뿐 아니라 후에 아들의 권력장악에 해가 될까 걱정스러워 며느리의 가족 모두를 구실을 만들어 처형했습니다. 봉건왕조의 왕권을 위협하는 것은 누구보다 왕의 형제였고 가까운 친족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형제들은 왕으로 선택되지 못하면 정계를 떠나는 것은 물론 역적음모에 얽히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면서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권력을 아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위한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옛날 옛적 이야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인 오늘 북한에서 형제간의 살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권력무대에 등장할 때도 가장 위험한 정치적 적수는 이복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력이 강했던 까닭에 김정일은 동생들을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외국에 내보냈습니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전 주민을 대상으로 ‘곁가지’를 경계하라는 교양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곁가지란 이상한 정치적 단어가 의미하는 대상은 김정일의 훗어머니, 이복형제와 삼촌 등 일가친척이었습니다.
김정은도 자신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된 것이 능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다만 김정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정남도 최고지도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에 참여한 초기부터 김정남을 잠재적 적수로 보고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김정은이 잠재적 적수인 형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것이 과연 정권유지에 도움으로만 될지는 불분명합니다. 국제사회는 자기의 고모부에 이어 이번에는 자기의 이복형을 서슴없이 살해한 김정은을 보면서 경악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형제와 인척도 서슴없이 살해하는 그가 다른 사람의 생명은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손에 대량 살육무기인 핵이 있다는데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더욱더 커지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도 아무리 사상교양을 받았다고 해도 고모부에 이어 형까지 살해한 지도자를 존경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