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생각지 않게 세종대왕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세종대왕은 우리글-훈민정음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세종대왕은 인재를 잘 썼을 뿐 아니라 그들을 믿음으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또한 모든 문제를 신하들과 토론하고 찬성하는 의견뿐 아니라 반대의견도 널리 받아들였고 신하들이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설득하여 동의한 후에 정책을 폈다고 합니다. 세종시기는 기후가 좋지 않아 매해 자연재해를 입었으나 조선조 500년 역사 중 가장 평화롭고 과학과 기술이 최고로 발전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이는 누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세종실록에 다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에서는 남한보다 먼저 조선실록을 번역했기 때문에 책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주민들은 우리나라 역대 왕 가운데서 세종대왕을 가장 으뜸으로 꼽습니다.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서 있고, 남한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1만원 지폐에는 세종대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세종대왕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습니다. 재작년에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관련한 이야기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성공리에 창작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 했다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국이민위천, 민위식위천(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이라는 문장이었습니다.
“백성이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백성을 위해 있다.” 이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원리 중의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존경받고 있는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1863년 남북전쟁에서 숨진 병사들이 묻힌 게티스버그에서 한 연설에서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라는 말을 언급해서 지금까지 유명한 말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그보다 400여 년 앞선 1444년에 인민을 위한 국가라는 말을 언급한 셈입니다.
그리고 백성은 체제나 국왕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하늘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은 북한식으로 해석하면 백성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들리지만 사실 너무도 적나라한 진실이 담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북한주민들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세종대왕의 말에 비추어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는 북한주민을 위해 있는 국가요, 북한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입니다. 세종대왕은 국가정치의 목적은 백성들이 누구나 생업에 힘쓰고 생업자체를 즐기는 생생지락(生生之樂)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으로 규정했다고 합니다. 생생지락은 지금도 남한주민들의 좋아하는 문구로 2012년 가장 바라는 희망을 표시한 사자성어 2순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북한에도 이민위천과 같은 좋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핵이나 전쟁준비, 체제사수, 수령결사옹위 이런 것들이 정말 주민들이 바라는 희망일까요? 비록 민주주의국가의 지도자가 아닌 봉건시대의 왕이었지만 세종대왕이 파악한 나라의 사명이나 주민들의 희망이 현 북한정권이 생각하는 나라운영정책보다 훨씬 인민적이고 이치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종대왕이 살아 돌아와 북한 정치를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경제를 개혁해서 주민들의 생업에 불편이 없게 하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