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은 남한의 국가명절입니다. 북한에 4대 명절이 있다면 남한에는 4대 국경일이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국회에서 1949년 10월 1일에 제정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3.1절,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을 국가적 기념일 또는 4대 국경일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들어 한글제정일도 국경일로 정해서 5대 국경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관습대로 4대 국경일이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북한의 4대 명절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 그리고 노동당과 공화국 창건일입니다.
어쩌다보니 남북에 4대 명절이라는 같은 단어가 생겼지만 겹치는 명절이 없습니다. 해방직후에는 3.1절과 광복절은 남북이 같이 기념하는 명절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광복절이 가장 큰 국가적 명절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8.15에는 평양과 지방도시에서 소련 간부들의 참가 하에 행사를 크게 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해방 직후 3.1절도 기념했습니다. 수류탄이 주석단 가까이에서 터져 김일성이 위험에 처했을 때 소련군 병사였던 노비첸코가 몸으로 막았다는 이야기가 북한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1946년 3.1절 기념행사 때 일이었습니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북한의 국가적 명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북한은 1968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수립하면서 소련의 영향을 부인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쇠던 8.15를 국가적 휴식일에서 제외시켰고 기념행사도 그만두었습니다. 대신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했습니다. 이날은 이틀을 휴식하도록 정했고 명절행사도 크게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대신 3.1절이나 8.15는 신문에 사설이나 내고 정 주년에 간단한 기념행사를 하는 별 볼일 없는 명절로 되었습니다.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성을 강조하면서 8.15 광복절도 휴식일로 정하고 개천절을 국가적 명절로 정하지 않았지만 단군릉에서 행사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3.1절은 아직도 국가적 명절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3.1운동의 지도자가 김일성이 아니고 이 운동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대중운동이었고 국제적으로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위 운동 회수는 2,000회 이상, 참가 인원은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3.1운동으로 넋을 잃은 일제는 무신통치로부터 문민통치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를 계기로 우리 민족의 반일운동은 무장투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계기로 상해임시정부가 조직되게 되었습니다.
국가적 명절은 그 국가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봉건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왕의 생일이 국가 기념일로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왕이 존재하는 나라들에서는 왕의 생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에는 왕이 없습니다. 선거 때마다 바뀌는 지도자의 생일을 국가적 기념일로 정할 수 없습니다. 대신 국가와 국민의 역사에서 의의를 가지는 날을 기념일로 정합니다. 남한은 그 날을 전민이 항쟁에 일떠섰던 3.1절과 우리 민족이 식민지지배에서 해방된 8.15, 민주주의 헌법이 만들어진 제헌절과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개천절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도자의 생일을 가장 크게 기념합니다. 짐바브웨의 무가베대통령도 생일을 크게 쇤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얼마 전 37년간 집권해 온 무가베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생일축하 행사를 열었습니다. 생일 행사에는 수천 명의 하객이 참석했고 200만 달러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지난 6월 이후 공무원들에게 제때 봉급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고 80% 이상의 노동자들은 비공식 영역에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북한도 방문했고 김일성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생일 기념하는 것도 북한에서 배웠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