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베트남 주민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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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국가 명칭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베트남 헌법개정위원회는 베트남의 국가 명칭을 현재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베트남 국회 상무위원과 당 중앙위원회는 5월 중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한 후 가을 국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 명칭을 삭제함으로써 베트남의 시장화와 경제발전을 대내외에 알릴 계획입니다.

베트남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자는 의견은 지도부의 생각이 아니라 베트남 주민들의 의사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1월 초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초안을 작성하고 공개했으며 그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에 기초해서 이 같은 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베트남은 한때 북한과도 매우 친근했던 나라입니다. 베트남의 분단과정과 전쟁 등은 한반도와 비슷했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베트남에 대해 매우 친근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북한은 물질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전쟁의 승리와 통일은 북한주민들이 남북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베트남은 북한과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자기들과 10여 년간 전쟁을 치른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정전 후 토지개혁과 국유화 정책, 계획경제가 실패하자 지도부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를 선포했습니다. 대외관계의 정상화, 도이모이 정책의 실시로 베트남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20여 년이상 장기화된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가난에 절었던 베트남, 1970년대 북한과 대비할 수 없이 가난했던 베트남이 오늘은 북한보다 더 잘사는 나라로 되었습니다.

베트남 지도부와 주민들의 유연한 사고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베트남 주민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정전 후 4년 후인 1977년부터 미국과 관계정상화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전후 재건을 위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끌어 오려면 미국과 수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은 전후 실시한 사회주의경제정책이 은을 내지 못하자 중국의 발전에서 자극을 받아 동유럽보다 더 먼저 1986년에 개혁개방정책을 받아들였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완전한 경제제도는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는 훨씬 나은 경제제도입니다. 때문에 사회주의정책과 시장경제정책을 다 겪어 본 베트남 사람들은 스스로 사회주의국가임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베트남처럼 사회주의하에서 살아본 사람들이 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유럽의 서방국가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가 매우 강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아직도 상당수 지식인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고 사회주의 복지정책이 주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무리한 사회복지정책으로 나라재정이 파산 직전에 처한 상황에서도 서유럽국가 인민들은 사회복지정책의 축소를 반대해서 대중시위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주민은 국호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빼라고 요구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정책을 동시에 겪어보면서 시장경제만이 경제적 빈궁에서 벗어날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증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