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너무도 요란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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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한주민들의 마음이 뒤숭숭하다고 합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입니다. 북한당국은 남한의 '최고 존엄' 모독 사건을 구실로 북한전역을 성토장으로 만들어 놓고 청년들에게는 전선탄원까지 요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폐쇄된 사회에서 사는 주민들은 정말 전쟁이 당장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나 남한은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전쟁포고가 하도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불감증까지 생겼습니다. 며칠 전 북한의 최고사령부 특별행동소조가 남한의 대통령과 언론사들을 상대로 공격을 개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조차도 남한 언론이나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이제는 가장 민감한 시장조차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거나 미사일을 쏜다고 하면 한번쯤은 주식값이 떨어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주식시장조차 꿈적하지 않았습니다.

남한주민들은 전쟁을 하면 싸움하는 나라만 녹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에 휘말리면 그 피해를 보상하는데 수십 년이 걸리게 될 것이고 어쩌면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명이 그 무엇보다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도 떠들기는 하지만 사실 전쟁할 생각이 남한보다 더 없을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정권을 잃게 될 것이 뻔 한데 정권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당국이 왜 전쟁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매일과 같이 남한응징을 외치며 주민들을 군중대회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만을 딴 데로 돌리고 단결을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원래 내부가 어수선할 때 외부의 적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가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입니다. 특히 북한같이 폐쇄된 국가에서 이러한 수법이 잘 먹힙니다. 사회주의가 망하기 이전에도 북한주민은 사회주의 국가 가운데서 가장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때 북한지도부는 미국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방력에 많은 돈을 투자하다보니 그렇다고 설명했습니다. 1990년 고난의 행군 시기 수십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죽을 때에도 북한당국은 생명보다 자주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설득이 최근에는 도를 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주민들에게 자유가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대통령을 욕할 권리도 있고 지어 북한의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도가 넘으면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할 뿐입니다. 그런데 남한 주민들이 자기들의 지도자를 모욕했다는 것을 트집 잡아 전국적인 군중대회를 연다는 것은 사실 억지스럽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남한주민은 북한의 지도자를 수없이 비난해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전에는 아무 문제도 없던 일들이 갑자기 북한에서 국가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을까요?

북한지도부는 4.15를 맞으며 주민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했던 강성대국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가만있기에는 민심이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변명치고는 너무 졸렬합니다. 남한의 대통령에 대한 무례한 언사나 억지스러운 군중대회 같은 것은 자기의 적까지도 정중하게 대하는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깡패'적 이미지를 부각시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