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한류열풍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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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에게 방송국에서 문의가 왔습니다. 최근 양강도 주민들이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푹 빠져 있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하다 보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자 뿐 아니라 남한주민은 비록 남한에서 만든 것이지만 보지 못한 드라마가 적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는 텔레비전 시청률 조사를 정기적으로 합니다. 보통 드라마 시청률은 50%를 넘지 못합니다. 보통 15~30% 정도이고 20%만 넘으면 인기가 있는 드라마이며 50%에 이르면 대박 난 드라마라고 봅니다. 드라마의 시청률에 따라 광고의 값이나 숫자가 결정되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시청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드라마를 시청하라고 별도의 광고까지 합니다.

그렇게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지 않다니 북한처럼 통제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의문이 들것입니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많아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에는 텔레비전 채널이 수십 개가 넘고 거기에서 세계 각국의 영화나 다큐(기록영화), 여러 가지 오락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어 아마 방영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모두 보려면 하루 종일 일도 하지 말고 밤을 새워가며 텔레비전을 마주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만 인터넷을 뒤지면 영화 수천 편을 다운받아 볼 수 있고 텔레비전에도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 기록영화를 신청하고 대금을 결제하면 임의의 순간에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주민들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반대로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남한의 드라마를 보려고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지도부는 남한드라마 유입을 막으려고 단속을 어느 때보다 강화하고 있습니다. 조직별로 드라마를 보지 말라고 교양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 한편 보다 걸리면 3년형이고 드라마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5년형을 매기고 있습니다. 교화소에는 드라마를 보다가 단속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수용능력이 모자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시청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오늘 북한의 현실입니다.

한국드라마나 외국영화 시청을 막을 수 없는 것은 결코 통제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주민들이 외부세계의 정보에 목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주민들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일 년에 제작되는 영화나 드라마가 십여 편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수단인 텔레비전의 채널이 한 개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밖에 없는 채널에서는 수령의 위대성과 당 정책을 선전하는 따분한 프로만 반복해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북한주민들이 인간의 생활을 재미있게 엮은 데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거기다 그렇게 알고 싶은 외부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남한드라마나 외국의 영화에 중독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은 아니지만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여 창조력을 높이는데 기여합니다. 북한에서 비난하고 있는 과학 환상영화의 상상력은 과학자들을 자극하여 오늘 많은 영화장면이 영화가 아닌 현실로 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고 감옥으로 보내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북한당국은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고 주민들을 단속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해야 합니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유지되지 못할 체제라면 스스로 집권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