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정서적 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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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서 중앙예술단의 지방공연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이름 높은 모란봉악단의 지방공연에 이어 인민군공훈합창단이 자강도에서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공연을 보게 된 자강도 주민들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뉴스는 과장이 심하지만 이 소식은 사실일 것입니다.

사실 북한의 지방 주민들이 중앙예술단의 공연을 볼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지방주민들은 평양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하지 않는 한 공연을 보기 위해 개별적으로 평양에 갈 수 없습니다. 통행증을 발급받기 불가능하고, 돈도 없고, 직장에 사결을 낼 수도 없고. 교통도 어렵습니다. 평양에서 열리는 행사에 선발되어 집체관람을 할 기회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무대예술공연이 매우 적습니다. 예술단도 몇 개 안되고 창작되는 예술작품도 많지 못합니다.

북한에서 올해 초 열린 예술인대회에서 논의된 것처럼 모란봉악단과 인민군 합창단 외에 손에 꼽을만한 예술단이 없습니다. 가극도 1970년대 4대 혁명가극을 창작한 이후에는 몇 편밖에 더 만들지 못했고, 연극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예술작품은 별로 재미도 없습니다. 모두 사상성, 충성심만 강조할 뿐 주민들의 실생활을 반영한, 주민의 감정정서에 맞는 작품이 없습니다.

북한의 모란봉악단 같은 그룹이 수없이 많고 자기 마음에 드는 공연이 있으면 전국 어디나 지어 외국도 갈 수 있는 남한주민은 이와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조차도 없습니다. 남한은 예술단체가 너무 많아서 야단입니다. 그리고 노래, 연극, 오페라, 발레 등 갖가지 장르의 작품이 너무 많이 창작 공연되다 보니 조금만 공연의 질이 떨어지면 관객을 모을 수 없습니다. 많다고 하여 결코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K팝, 특히 소녀 소년들의 그룹(악단)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과 남미, 중동 지역까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정서적 욕구는 생존 욕구와 더불어 인간의 중요한 욕구의 하나입니다. 영화를 너무 좋아했던 한 탈북자는 남한에 와서 영화를 실컷 보자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무 많아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다 너무 많으니 보고 싶은 욕망조차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먹는 것이 제일 즐거웠던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먹는 재미가 이전만 못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실 북한은 먹을 것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킬 예술도 그 못지않게 부족한 곳입니다. 북한지도부는 식량은 부족하면 국제사회의 식량지원도 받아들이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도 해서 보충하지만 문학과 예술은 각종 통제로 창작을 억제할 뿐 아니라 외국의 예술은 수입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외국문화에 대한 두려움을 주민들에게 주입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노래를 부르거나 예술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강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TV와 신문에서는 자강도 주민들이 중앙예술단을 보내준 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에 감동하면서 새로운 비약을 일으킬 결의에 충만 되어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수령의 배려가 아니라 천부적으로 자신에게 차례진 마땅한 권리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얼마나 정서적으로 가난하고 메마른 곳에서 사는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남한주민들은 노래와 춤 영화와 드라마에 묻혀 살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삽니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마음껏 문화를 즐기고 있는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오히려 늘 불만스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