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6·25전쟁의 실제적 도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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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시작되어 3년간 지속된 이 전쟁은 남북에 막대한 인적, 물질적 손실을 입혔습니다. 한 강토에서 이웃으로 살아온 남북한 주민들은 전쟁 이후 서로 용서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되었습니다.

지난 21일, 조선중앙통신은 ‘자료를 통해 본 조선전쟁 도발자의 정체’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통신은 “지난 조선전쟁은 미제가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제패를 위한 첫걸음으로 도발한 범죄적인 대량 살육 전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글에서 주장한 것처럼 지금도 다수의 북한주민들은 조선전쟁을 미국이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면서 그 사실을 극비로 했습니다. 북한주민이나 군인들은 물론 지어는 정권기관 고위급 간부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전후에는 당시 전쟁을 함께 모의했던 박헌영을 반당반혁명종파분자,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습니다. 동시에 그와 연관이 있는 남로당 성원들을 모두 미국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해버렸습니다.

또한 북한당국은 수십 년 동안 전쟁 직전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덜레스가 38선을 시찰하고 전쟁발발을 승인했고, 6월 25일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남한군의 외출이 중지되었다는 등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주민들을 설득시켰습니다. 북한이 하도 조선전쟁의 도발자가 미국과 남한이라고 주장하다보니 한 때는 남한주민들 속에서도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북한의 유력한 동맹자였던 소련과 중국이 조선전쟁자료를 공개했습니다. 1994년 러시아 외무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러시아방문 시 6·25 관련 외교문서를 넘겨주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김일성은 49년 3월과 50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남로당 출신인 박헌영 외무상과 함께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하고 스탈린에게 남침에 대해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어 김일성은 50년 5월 13일 베이징에서 모택동을 만나 구체적인 남침계획을 협의하고 미군이 참전하면 중국도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소련과 중국의 외교문건이 공개되면서 남한에서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나에 대한 논쟁이 끝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6·25전쟁의 원인을 여전히 미국과 남한에 돌리면서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25-7.27 미제반대투쟁의 날을 정하고 주민들 속에서 반미사상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한반도는 분단의 위험에 처해있었습니다. 김일성으로서는 그를 허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고 그 수단은 전쟁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목적만 정의롭다면 그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역사위조는 허용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있고 정보통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역사를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북한이 국제사회나 남한주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