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한에서 역사드라마 정도전이 성황리에 방영되었습니다. 드라마 대본도 잘 만들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북한주민 속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당국은 이 드라마가 주민들 속에 퍼지는 것을 철저히 단속한다고 합니다. 정도전은 왕씨의 나라였던 고려를 이씨의 나라인 조선으로 바꾸는, 남한말로 역성혁명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드라마의 내용은 백두혈통을 대대손손 세습하고 있는 북한지도부도 바꿀 수 있으며 필요하면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역사드라마를 볼 때 남한 시청자들 속에서는 항상 논란이 벌어집니다. 드라마에서 형상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여부 때문입니다. 원래 드라마란 허구를 필수로 하는 것인데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드라마는 어느 정도까지의 허구를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를 놓고 시청자들끼리 갑을논박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드라마를 만들 때는 역사자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합니다. 이번 드라마도 고려사와 이조실록에 근거하여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다고 하는 고려사나 이조실록은 다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고려 마지막 왕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이조시기에 와서 진행되었습니다. 고려사에는 이번 드라마에서 나온 우왕이 실제로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 당시 중의 신분으로 나라정사를 좌우지하다가 숙청된 신돈과 신돈의 시녀였다가 후에 왕비로 된 반야 사이에서 본 아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성계가 고려왕을 숙청하고 왕위 오른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세울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왕씨의 나라를 바꿀 계획을 세운 것도 정도전이고 그 과정을 추진시킨 사람도 정도전입니다. 그리고 이성계를 왕으로 세운다음 나라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경국대전을 만든 것도 국가체제를 정비한 것도 정도전입니다. 지금 서울로 수도를 옮기는 일을 맡은 것도 정도전이며 왕궁이며 거리의 이름도 정도전이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방원에 의해 목숨을 잃은 다음 수백 년 동안 정도전은두 왕조를 섬긴 변절자로, 처세에 능한 모사가로 취급받다가 1865년 고종 때 와서야 신분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는 산 자의 필요에 의해 기록되기 때문에 부풀려지거나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에 북한은 김일성 서거 20돌을 맞으며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크게 선전하고 주민들에게 재학습시켰습니다. 그러나 사실 일제식민지 통치 시기 일제를 반대해 싸운 사람들은 수없이 많으며 그 가운데는 김일성보다 훨씬 더 많은 공을 세운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거나 종파분자로 숙청되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은 김일성이 주장해서 일으켰지만 전쟁승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중국 해방에 참전했다가 조선에 나온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민지원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며 역사학자였던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즉 역사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지만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 가운데서 기록되는 것은 극소수이며 어느 것이 기록되고 어떻게 해석되는가 하는 것은 역사가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역사가는 오늘의 현실을 설명하고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역사적 사실만 선택 해석합니다.
현재 북한에서 혁명역사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주체는 학자가 아닌 당과 수령입니다. 북한주민들이 유치원 탁아소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동안 외우는 혁명역사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편견과 왜곡, 상상으로 가득 채운 한편의 장편 예술드라마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