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현지지도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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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수령의 혁명업적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현지지도에 대해 언급하곤 합니다. 북한에서 현지지도 전통을 만들어낸 것은 김일성 주석입니다. 그는 생전에 전국을 밟으며 인민을 위해 멀고 험한 길을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통계치를 발표한데 의하면 한해에 평균 177일 420곳을 현지지도 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위원장도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생전에 현지지도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이 현지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공식 보도한 횟수를 비교하면 아버지 때의 4배나 됩니다.

현지지도란 북한에만 존재하는 정치 용어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현지에 나가 봅니다. 특히 중국의 지도자들이 현지를 찾았다는 소식이 가끔 보도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그것을 북한처럼 현지지도란 공식적인 용어로 정의하지 않거니와 그것을 지도자의 주요 정치행태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본래 의미를 따지면 현지지도는 좋은 것입니다. 최고지도자가 아래에 내려가 실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주민들에 의거해서 문제해결의 방도를 찾는다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청산리에 찾아 가 농민들과 함께 멍석을 깔고 앉아 자애로운 웃음을 띠고 농사일을 의논하는 김일성 주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의문이 뒤따릅니다. 왜 북한의 지도자는 다른 나라 지도자와 비할 수 없이 많은 현지지도를 하고 있는데 북한주민은 제일 못사는가?

지도자가 찾아가는 현지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곳입니다. 물론 한곳을 통해 다른 곳도 그러하리라는 판단을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모든 곳이 다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초기와는 달리 지도자가 현실과 멀어지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수령의 기분에 따라 간부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판이라 간부들은 현지지도 시 수령이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간부들은 그 지역에서 제일 잘되고 있는 공장이나 농장, 학교, 군부대만 현지지도 하도록 안내합니다. 공장을 현지지도 한다고 하면 어디 가서든 자재를 들여다가 가동시킵니다. 짐승이 몇 마리밖에 없던 목장에 염소와 토끼를 채워 넣고 양어장에는 물고기가 넘쳐나게 만듭니다. 군대를 현지지도 한다고 하면 영양실조에 걸려 약해진 병사는 다 빼돌리고 다른 부대에서 건강한 병사들을 데려다 인원을 채웁니다.

그런가하면 매일 소금국과 강냉이밥만 오르던 식탁에 명태며 고기며 과일을 올려놓습니다. 지도자는 그것을 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현지지도가 끝나면 선물이 들어오고 간부들은 표창을 받고 승급을 합니다.

그러한 현지에서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하여 지도자는 나라의 정책을 만들어냅니다. 지난기간 북한에서 벌려놓았지만 조금도 덕을 보지 못한 중소발전소 건설, 염소목장, 양어장 건설 방침이 다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현지를 시찰하면서 내린 지도자의 교시와 말씀은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됩니다. 현지 교시와 말씀을 전달받는 주민들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명령을 집행하느라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을 털어 돈을 내고 노력동원 다니느라 더 살기 어려워집니다.

지도자는 만능박사가 아닙니다. 또 국가는 어느 한사람의 지혜로 운영해나갈 수 없습니다. 북한이 세기적 낙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령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자기의 견해를 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경제문화 발전을 위해 힘을 낼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능력은 현지지도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제도를 만드는데서 발휘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