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삐라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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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에 삐라살포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의 '삐라살포 시 군사 타격 발언'에 남한군은 '원점타격' 원칙을 강조하며 강경하게 대응해 나갈 뜻을 밝혔고 탈북자단체들은 삐라를 공개적으로 또 보냈습니다.

사실 삐라살포는 엊그제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냉전시기 남북은 각각 자기의 사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 삐라를 보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국방부는 1980년대 5억 9천여만장, 1990년부터 1999년까지는 매년 1억 1천만 장~1억 5천여만장을 살포했습니다. 북한도 역시 그만큼의 삐라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삐라 문제가 한 번도 공식화된 적이 없었습니다. 남북 정부는 자기 주민들에게 삐라를 주우면 가져다바치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부터 북한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6.15공동선언에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중지할 데 대한 문구를 넣자고 주장했습니다. 그 합의에 의해 군에 의한 삐라 살포가 중지되었지만 탈북자들에 의해 다시 삐라살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기 시작했고 지어 삐라를 뿌리는 경우에 그곳을 포격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지금 보내는 삐라는 국가가 아닌 민간단체가 주민들로부터 돈을 모금해서 보내다보니 기껏해야 한해에 1천만 장 정도이고 삐라의 질도 좋지 않습니다. CD나 식량, 간식 딸라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 량이 많지 않습니다. 떠들 필요 없이 북한도 맞받아 삐라를 보내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데 북한의 고민이 있습니다. 삐라를 보낼 종이도 문제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은 남한주민을 설득할 삐라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전에는 무료교육제와 무상치료제와 같은 사회주의적 시책의 우월성, 발전된 공업과 농업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북한체제가 좋다고 설득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북한현실을 남한주민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남한에서 보내는 삐라내용의 파급력은 이전에 비할 바 없이 커졌습니다. 북한이 하도 뒤떨어지다보니 평범한 세상소식 하나하나가 북한주민들에게는 모두 충격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드는 삐라는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 북한주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감추고 있던 것, 거짓말 했던 것을 밝히는 내용을 선발해서 담았습니다. 특히 북한주민들이 하늘처럼 숭배해야 하는 지도자의 실체도 서슴없이 밝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주민들의 사상 상태가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리 삐라가 날아와도 정부가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삐라내용을 보고 동요할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삐라를 보면 누구나 흔들립니다.

사실 그동안 남한에는 ‘지금이 어느 땐데, 옛날처럼 유치하게 삐라를 보내서 뭐 하냐, 별로 북한사람에게 도움도 안 되는 것 가지고 복잡해지는 것이 싫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도 북한이 떠들다보니 지금은 남한주민들도 ‘삐라가 북한주민들에게 효과가 있기는 있는가보다’로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의 군사적 대결에서는 북한은 공격하고 남한은 방어를 했습니다. 북한의 무분별한 군사적 행동을 민주국가인 남한이 국제법을 어기면서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삐라문제에서는 반대로 되었습니다. 남한주민의 삐라 공격에 독재국가인 북한은 공격으로 맞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사상공세에도 끄덕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자존심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