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정치와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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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서 이영호 전 총참모장이 간첩이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이영호는 군을 결집하여 국가전복을 시도하려고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숙청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영호 뿐 아니라 함께 하려던 측근들도 동시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북한역사에는 종파 사건, 간첩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고위간부로 처음으로 숙청된 사람은 박헌영이었을 것입니다. 북한은 1953년 박헌영 이승엽을 비롯한 남노당 출신 간부들을 미국의 고용간첩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전쟁패전의 원인을 그들에게 넘겨 씌었습니다.

1956년부터 1958년 사이에는 중국 연안지역에서 항일혁명에 참가했던 간부들과 해방 직후 북한의 당, 국가 건설을 위해 나와서 일하던 소련계 간부들이 청산되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당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반대한 소련의 후르쇼브에 추종한 수정주의 종파분자라는 것이었습니다. 1967년 5월부터 1969년에는 김일성부대에서 싸웠던 항일투사들도 수정주의 봉건주의 군벌주의 죄목으로 청산되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이 아니라 김평일에게 줄을 섰던 간부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김정일의 형제들도 곁가지라는 이유로 해외로 나가야 했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는 동유럽 특히 러시아 유학생들이 숙청의 표적으로 되었습니다. 또 1990년대 후반기에는 심화조 사건이 터져 수십 년간 김일성을 받들어 일해 온 간부들이 남한의 간첩으로 몰려 취조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2010년에는 당중앙위원회 비서였던 박남기가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라졌습니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북한 권력서열 2위라고 하던 이영호 전참모장사건이 또 터졌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1인 통치시스템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제도가 존재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물론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피비린내 나는 무자비한 권력 숙청도 그 중요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해방 후 남로당 위원장이었고 아마 서울에 공산당정권이 섰으면 최고 지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박헌영은 김일성과 같이 조국해방전쟁을 발기했고 함께 전쟁을 이끌었지만 김일성의 정적이 되어 사라졌고, 항일혁명의 길에서 함께 피를 흘리던 투사들도 김일성의 1인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자 숙청되었습니다.

수십년간 당중앙위원회에서 김일성께 충성 다했다고 하던 문성술도 김정일의 미움을 사서 사라졌고 박남기도 희생양이 요구되자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이번에는 김정은 정권창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이영호가 간첩으로 되었습니다. 그들이 숙청된 진짜 이유는 간첩죄가 아닙니다. 다만 1인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데서 장애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합니다. 사상이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으로부터 조금씩 다른 사람까지 생각이 다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이한 견해를 내놓고 논쟁하며, 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치가 진행됩니다. 물론 시간이 들고 비용이 들지만 그것이 인간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북한이 수많은 동지들을 제물로 삼으며 유일적 지도체제를 유지했지만 결과는 인권의 부재, 극심한 가난이었습니다. 역사는 반드시 숙청을 재평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