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부위원장의 숙청에 관한 뉴스가 토픽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동안 용케도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그에게 비로소 올 것이 온 것입니다.
북한에는 곁가지라는 정치술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가 생긴 것은 1970년대로, 김정일위원장이 수령의 후계자로 등장할 때입니다. 후계자로 등장할 때 경쟁상대로 된 것은 다른 정치가가 아니라 친족들이었습니다. 삼촌, 의붓어머니, 이복동생들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정쟁을 벌렸던 김정일 위원장은 등극한 이후에 그들을 완전히 정계에서 제거해버림으로써 권력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결국 곁가지란 혈통으로 따지면 적통이 아니라는 말로, 왕위에 등극하지 못한 종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곁가지에 추종하지 말고 오직 당, 김정일위원장에게만 충성해야 한다고 당 내부교양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곁가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모두 숙청했습니다, 곁가지인 이복형제들은 죽이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가지 않았지만 권력에서 철저하게 제외되었습니다. 북한의 원리로 보면 장성택부위원장은 틀림없는 곁가지입니다. 그런데 권력에서 제외당하지 않고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권력을 일정하게 행사한 것을 보면 그래도 김정일위원장에게는 위험한 인물로 비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권력에서 친족들을 배제해 온 것은 봉건제국의 오래된 전통입니다. 장성택은 공주의 남편이니 옛적이름으로 말하면 부마입니다. 부마란 이름은 원래 중국에서 온 것이라 합니다. 전해오는데 의하면 옛날 진시황제가 각지를 순행하며 위엄을 과시하다가 습격을 받았는데 진시황이 탄 수레가 아니라 옆에서 따르던 다른 수레 즉 부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깜짝 놀란 진시황은 각지를 순행할 때마다 공격에 대비하여 적을 기만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거를 많이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후 왕들도 진시황의 본을 받아 자신의 대역을 부거에 태워가지고 다녔는데 주로 사위가 탔다고 합니다. 사위는 황실의 가족이라 황제의 위상과 존엄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의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위는 종친이 아니므로 희생양을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사위가 황제를 대신해 부거를 타고 각지를 순행하면서 사람들이 황제의 사위를 ‘부마’라 부르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중국에서도 옛날에 왕의 사위는 이용당하면서 견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말을 그대로 써서 왕의 사위를 부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기 이조시기에 부마는 관직을 가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부마 뿐 아니라 왕직에 오르지 못한 왕의 형제나 사촌들 즉 종친도 권력을 가지는 것을 금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부마나 종친이 관직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신하들이 왕에게 간언한 말이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종친이나 부마는 작위를 주어서 귀하게 하고, 녹을 넉넉하게 주어서 부귀하게 해야 하지만, 관직을 맡기지 않아서 안전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관직을 맡았다가 과오를 범하면 왕에게 허물이 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들이 왕의 권좌를 위협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봉건시기에 왕의 권력을 위협하는 첫 번째 세력이 종친이었습니다. 관료들은 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종친중의 한명을 내세워 왕을 바꾸어 버리고 그를 무력화시킨 다음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장성택 부위원장의 숙청을 민주주의 정치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정치상황이 봉건제도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봉건왕조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