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이데올로기와 폭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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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장성택과 그 일당의 멱살을 틀어잡고 설설 끓는 보이라(보일러)에 처넣고 싶다" "그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강선으로 보내달라, 저 전기로 속에 몽땅 처넣고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려도 직성이 풀리지 않겠다” 이번 장성택 부위원장 처형사건과 관련하여 북한주민들이 한 말입니다.

사실 북한에서 숙청은 일상화된 정치입니다. 북한 현대사는 1950년 대 전쟁패전의 책임을 물어 남노당 간부들을 미국의 고용간첩으로 숙청한 때로부터 이어 연안파, 소련파를 숙청한 56년 8월 종파사건, 67년 갑산파 숙청, 70년대 곁가지 숙청, 90년대 아카데미사건, 심화조사건 등 큼직한 숙청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에도 박남기 처형사건을 비롯하여 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한 숙청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사회주의 나라에서 숙청은 간부교체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를 통해 정치인사의 교체가 이뤄지지만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숙청이 정치권의 교체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숙청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핵과 미사일 문제로 세계의 문제아로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북한의 정치적 노선 선택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온 장성택에 대한 처리는 처음부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숙청내용이나 방법이 국제사회의 상식을 초월했습니다.

케리 미국무장관은 충격적인 장성택 사형은 김정은이 얼마나 냉혹하고 무모한지를 보여준다면서 김정은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비교했습니다. 유엔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은 장성택의 체포와 군사재판, 처형은 모두 5일 이내에 이뤄졌다고 비난하면서 북한의 연좌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로 가게 될 사태를 우려했습니다. 중국당국은 공식적인 보도를 자제하고 있지만 중국주민들이 더 끓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터넷에는 ‘조카가 고모부를 살해한 패륜’ ‘잔혹한 숙청방식’으로 묘사한 글이 수없이 올라왔고, 사람들은 “문화대혁명 때도 이런 패륜은 없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장성택을 기관총으로 사형했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버렸다느니 굶주린 개떼가 시신을 뜯어먹도록 내버려두었다느니 등 별의별 말이 다 돌고 있습니다. 지어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던 사람들도 이번 사건으로 경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종파로 규정된 장성택과 그 연관자들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국제사회에 또 하나의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어떻게 저런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북한주민들은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사람들인가?

북한주민들은 지난 시기 종파분자는 당과 혁명대오의 단결을 파괴하려는 놈, 뒤에서 쏠라닥거리며 당과 수령을 헐뜯는 놈, 혁명의 원수로 용서할 수 없는 자라고, 따라서 무자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종파분자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정도에 따라 계급적 입장과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평가받았습니다.

격분에 넘치는 어조로 종파분자들을 단죄하는 모습은 56년 8월 종파청산 시 강선제강소 노동자들을 방불케 했습니다. ‘수령님 종파분자들이 뭐 어쩌구저쩌구 해도 우리는 수령님만 믿습니다. 그놈들을 우리에게 보내십시오, 전기로에 처넣겠습니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반복되는 광란적인 정적 숙청, 그에 동조하며 똑같은 말을 외우는 군중들을 보면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폭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지 다시금 생동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