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순] 혈통과 성분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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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를 계기로 '백두혈통 계승'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해 유일영도체계를 굳게 세울 것"을 연일 촉구하고 있습니다. '백두의 혈통은 혁명의 영원한 피줄기'라는 차원에서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백두의 혈통을 순결하게 계승해나가며 대를 이어 꿋꿋이 이어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혈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결정되던 시대에 '혈통'은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느 신분이었는가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양반과 천민을 구분하는 왕조시대에서 개인의 능력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가족 중 한사람이 반역에 연루되면 3대를 멸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왜냐하면 '혈통'이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혈통'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영국이나 일본 등 몇 몇 국가에서는 왕실의 전통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왕실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정치권력이 선거를 통해 국민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서 절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가주권은 인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죄인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공동 형사책임을 지도록 하는 '연좌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우리도 1894년 갑오개혁 칙령으로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시행하지 말라"는 것이 선언되기 전에는 가족이나 친족의 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반역죄에 연루된 사람의 친족, 외족, 처족 등 3족이 연루되어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에 연좌제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혈통'이 강조되었습니다. 남한에서도 80년대 중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신원조회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연좌제로 인한 불이익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헌법 제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은 성분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출신성분'이나 '토대'는 조부모, 부모, 형제 등 가족 및 친척의 행적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출신성분'보다는 '돈'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토대가 나쁜 사람은 법 기관, 당 간부 등이 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파악됩니다. 학생의 성적이 뛰어나도 부모의 토대가 문제가 되면 김일성종합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토대가 좋은 경우에는 개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이익이나 혜택은 명백한 차별로 인권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북한사회주의 헌법 제8조에는 "공화국의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라고 강조하고 국가는 "근로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요소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점에서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혈통'중심의 성분제도는 폐지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