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순] 법정치

0:00 / 0:00

북한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들을 취해 오고 있습니다.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국가에 대해 비난과 압력을 가하는 것과 함께,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유엔인권이사회가 출범하면서, 인권침해가 특별히 문제가 되는 국가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유엔의 회원국 모두가 4년마다 1번씩 인권상황을 점검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2009년 1차 보편적 정례검토를 받았고, 2차 검토는 오는 5월에 받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1996년부터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북한주민들을 통해서 북한인권상황을 파악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여러 탈북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 중의 하나는 2012년 이래 최근에 제가 북한이 '법정치'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 '인덕정치', '광폭정치'를 강조하다가, 새로운 지도자는 '법정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당국이 말하는 '법정치'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법정치'를 어떤 의미로 알고 계신가요?

국제사회는 인권개선의 중요한 방식으로 '법치(rule of law)'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독재체제가 자의적으로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폭력에 의한 통치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자의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들이 만든 법률에 의거하여 사회가 작동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하였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체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개혁과정은 매우 더디고 어려운 과정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2011년 10월 16일 행정처벌법을 개정하면서, "준법교양과 법적 통제를 강화"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법적 통제 기능강화와 관련하여 북한학자들은 법을 '국가관리의 기본수단'이라고 규정짓고 법적 통제가 강화될 때 국가관리가 원만히 진행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의 '법정치'는 국제사회의 '법치'와 다른 개념으로 보입니다.

'법'은 단순히 사회적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이 정치기관인 당의 통제를 받아 주민들의 기본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세계인권 선언 제6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지며, 제7조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재판에서 동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신 성분이나 재산,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정치적인 교양을 이유로 법에 근거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2003년 장애자보호법 등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왔고, 이후에도 형법 등 많은 법률들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 사회의 기준을 반영하는 노력들도 보이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가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권'을 법률에 반영하여야 합니다. 법률을 개정하는 것과 함께 법률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당국이 법률로 제정한 내용들이 법 기관에서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 일꾼들이 법률에 근거 하여 인민들의 권리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범죄 협의가 의심된다 할지라도 법기관이 발급한 '영장'없이 수색하거나 체포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또한 재판 없이 사회교양을 이유로 '노동단련대'에 수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입니다. 북한의 '법정치'가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법치'와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