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한 주가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저는 지난 주 제가 일하는 연구원에서 일 년 연구계획을 토론하기 위해 동료들과 같이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은 아직 춥지만, 부산 해운대에는 동백꽃들이 피었습니다. 붉은 꽃도 예쁘지만, 하얀 동백꽃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손 전화에 동백꽃과 바다사진을 담아 왔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평양의 영어선생님'이란 책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책은 재미동포 소설가인 수키 킴이 2002년 이후 몇 차례 북한을 다녀오고 2011년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6개월여 간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쓴 것입니다.
저는 한 2년 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수키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수키는 서울에서 중학교 1학년을 다니다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본인이 책에서 쓰고 있듯이, 수키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통역사'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큰 상을 받았고, 영어로 발간된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수키는 제게 본인이 서명한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교복차림의 소녀가 그려진 책의 표지 그림은 수키의 언니 써니 킴의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수키가 준 영어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 중학생으로 이민자가 된 사람이 작가로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읽는 대부분의 책들이 전공서적입니다. 수키의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 속의 한 장면에 빠져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저는 아 언어로 이렇게 아름답고 생생하게 그림을 그릴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였습니다.
수키가 본인의 평양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는 이야기는 만나서 얼마 되지 않아 들었습니다. 원고를 다 넘기고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한 동안 서로 바빠 연락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미국 출장을 다녀오다가 미국 워싱턴 공항에서 CNN에 출연한 수키를 보게 되었습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암살을 설정한 '인터뷰'란 영화 개봉관련 논란이 있던 시점이라 수키의 책은 미국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책이 다 팔려서, 계속해서 추가 인쇄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수키의 책은 우리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책 홍보를 위해 서울에 온 수키는 요즘 신문과 방송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저희 연구원에도 초청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수키에 대한 관심은 작품성보다는 얼마 전 남한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된 '신은미'라는 재미교포와 대비되는 시각을 가진 '재미교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제게는 많이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저는 여러 번 외국을 여행하면서 일반 현지인들이 제게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답하면 곧바로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궁금해 하던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했지만, 코리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남한과 북한을 구분할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평양의 영어선생님'은 이산가족 부모를 둔 재미교포 작가의 북한사회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애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저는 최근 6.25전쟁 납북피해자들에 대한 증언 기록 집을 자세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납북피해가족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입니다. 분단의 상처가 이미 긴 세월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아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우리가 분단의 상처를 애써 덮으며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6.25 전쟁은 이미 끝난 전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진행 중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상처가 제대로 아물 수 있겠나 싶습니다. 이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의 꿈을 구체화하는 다양한 노력들을 남북한이 함께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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