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 여러분,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습니까? 남한에서는 음력설과 추석 모두 3일씩 휴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대체휴일제가 시작되어 일요일과 추석휴일이 겹친 것을 수요일에 하루 더 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회사나 공공기관들이 이제는 토요일에 일하지 않기 때문에,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5일간의 연휴를 갖게 되었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휴가를 내게 되면, 무려 9일 간 쉴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크게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탓인지, 어제와 오늘 서울 시내 교통상황이 훨씬 좋아진 것 같습니다.
명절은 온 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명절 증후군', '명절 스트레스' 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명절을 보내고 나면 나름의 후유증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명절음식을 만들고 대가족의 세 끼 식사를 준비하다보면,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제일 크기는 합니다.
제 기억 속의 추석은 새 옷과 맛있는 음식들로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장에서 새로 사 오신 옷들을 입고 기뻐하던 장면들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당시의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사진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들이 생활 사정들이 좋아졌기 때문에, 풍요롭고 여유 있는 명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 아이들은 명절이 아니어도 입고 싶은 옷이나 음식들을 손쉽게 얻게 됩니다.
그래서 특별히 명절에 경험하게 되는 행복감이 많이 사라지게 된 것 같습니다. 언론보도들을 통해 보면 명절이후 이혼 건수가 급격히 늘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가족 간의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심각하게 표출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농촌지역에서 살다가 12살이던 초등학교 5학년에 도청소재지인 도시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부모님을 떠나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니는 삼촌·고모와 같이 살았습니다.
남의 집 방을 빌려서 생활하고, 쌀이나 음식재료도 집에서 가져다먹었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있어서 자동차로 한 40분 정도의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구불구불 시골길을 돌아 돌아가기 때문에 꼬박 2시간 반도 넘게 걸렸습니다. 오랜만에 자동차를 타면 여지 없이 차멀미를 하기 때문에 고향을 다녀오는 것은 힘들고 먼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형제들을 만나 짧지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명절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시집에서 8년을 같이 살았고, 지금도 시부모님과 차로 5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친정은 멀리 있기 때문에, 명절이라고 평소와 다를 것이 거의 없습니다. 차례도 각 자 맡은 음식을 준비해서 명절날 아침 시집에 모여 지내게 됩니다. 어렸을 적 추억 속에 남아있는 명절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사는 것이 더욱 풍족해 졌지만, 그렇다고 행복감이 더욱 커진 것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행복한 명절을 위해 음식 장만이나 집안일도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분담하자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집안일도 같이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남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일방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명절은 다른 것 보다 가족들이 마음을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가족은 남이 아니어서 서로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족은 행복한 시간도 어려운 시간도 같이 해야 하는 운명공동체입니다. 크게 보면 우리 남북한도 모두 한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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