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순] 분단의 고통치유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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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출장차 나와 있습니다. 제가 서울을 떠나던 날 눈이 많이 내려서 비행기 출발이 한 시간 넘게 지연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고 기온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한 20여 일 남은 성탄절을 위한 장식과 거리조명이 화려합니다. 눈 내리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노래들도 들려옵니다. 성탄절은 12월 25일이라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축제분위기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바로 전날인 12월 2일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박근혜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며 정부와 민간이 같이 협력하여 행복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저도 민간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날 회의에서 한 민간위원은 통일준비를 위해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등에 대한 사회적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통일은 한반도 구성원 전체를 위한 ‘치유’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전체회의 전에 통일준비를 위한 시민자문단의 정책제안 의견을 수렴한바 있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문화분과’에는 65개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등 대규모단체들부터 작은 규모의 통일운동단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활동분야도 통일교육, 대북지원, 사회문화, 이산가족, 납북자, 북한인권 등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전반적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분단의 고통을 덜어가기 위한 남북한 간의 협력을 제안하였습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및 북한인권시민연합은 현재 유엔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북한인권 관련 책임자에 대한 국제형사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 동안 연구자로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어오면서 민간단체들과도 교류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 시민자문단회의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제 생각을 가다듬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남북 간 인도적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해 왔지만, 가족당사자들의 아픔을 제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였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더 진지하게 그 분들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내년이면 우리가 일본식민지에서 해방된 광복70주년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열강에 의해 남북한이 분단된 70주년이기도 합니다. 6.25 전쟁은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를 가져왔으나,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전쟁의 흔적들을 말끔히 지우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쟁은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고, 특히 가족들이 납북되어 행방을 알지 못하고 생활해온 분들에게는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습니다.

1950년 8월 6.25사변피랍치인사가족회로 시작되었던 가족단체는 2000년 11월 가족협의회로 재결성되었습니다. 협의회는 6.25전쟁 납치자의 존재를 입증하고 송환이 실패된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역사자료를 발굴하고 납치피해가족의 증언들을 수집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가족협의회의 노력으로 2010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 졌습니다.

정부위원회는 6.25때 북한으로 끌려가신 가족들의 피해신고를 받는 것과 함께, 전국단위에서 피해사실을 발굴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해외에 있는 역사자료들을 수집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정부가 갖고 있는 납북인사명단을 하나의 명부로 통합하는 전산작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내용을 보면서, 저는 새롭게 전쟁의 상처들이 아직도 우리 안에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통일은 대박이다’고 선언한 박근혜대통령의 발언이 올 한해 남한에서는 통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통일이 남북한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동북아 지역을 위해서, 더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대박’이며 ‘치유’가 되도록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