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북, 미 핵위협 거론 근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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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핵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핵태세검토보고서, 즉 NPR이라고 불리는 이 보고서는 미국이 향후 5년에서 10년간 추진할 핵정책의 방향을 담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부터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오바마였기 때문에 미국의 핵정책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발표된 보고서는 예상대로 핵무기의 역할을 대폭 줄이고 핵군축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과거 냉전시대와 달리 이제는 핵보유국 간에 핵전쟁을 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입니다. 그 대신에 핵물질과 핵기술이 테러 집단의 손에 들어가서 핵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가 우려하는 핵테러 위협과 핵확산을 줄이겠다는 것이 새로운 핵정책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 다음으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는 것입니다. 미국이 먼저 핵군축을 추진하고 핵무기의 역할을 줄임으로써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새로운 핵정책은 핵무기확산금지조약, 즉 NPT에 가입하고 핵개발을 포기한 국가에 대해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NPT에 가입한 비핵국가들이 설혹 미국과 미국의 동맹을 공격하고 화학‧세균무기를 사용하더라도 핵으로 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역대 미 행정부의 핵정책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입니다. 한반도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과거에는 북한이 NPT에 가입하고 핵을 포기했어도 만약 남침을 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핵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핵무기만 포기한다면 남침을 해도 재래식 무기로 보복을 하되,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미 행정부 당국자들은 핵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정책이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부 수석부차관보는 외신기자회견에서 이 정책이 만들어진 이유의 하나가 바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새로운 정책이 현재 핵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북한이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핵확산을 계속한다면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대처하겠다고 천명했는데, 여기서 모든 수단에는 핵무기 사용도 포함됩니다.

과거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불량국가"로 불렀던 것과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을 "이탈국가"라고 명명했습니다. 국제 핵비확산체제에서 떨어져나간 국가라는 뜻임과 동시에 다시 이 체제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용어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핵정책은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핵을 포기하면 미국의 핵위협은 근본적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천명했습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고, 북한정권이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