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누가 북한의 말을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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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지난 6월 8일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천안함 침몰과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 신선호 명의의 이 서한에서, 북한은 남한당국의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면서 국방위원회의 검열단 파견 제안을 남한이 받아들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유엔안보리가 남한의 일방적인 조사결과만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엄중한 후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천암한 사태에 대해 북한이 완강히 부인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의 성격을 먼저 짚어봐야 합니다. 천안함 침몰은 북한이 과거에 연평도와 대청도 인근에서 벌인 세 차례의 도발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건입니다.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 즉 NLL을 침범해서 발단이 된 세 차례의 사건은 공개적인 도발이었습니다. NLL이 문제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공개적인 시비를 벌인 것입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은 대남공작 차원의 전형적인 비밀 기습공격입니다. 이런 작전의 특징은 처음부터 북한과는 무관하다는 전제하에 진행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설혹 남한이 확보한 것과 같이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더라도 북한은 철저하게 발뺌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설혹 북한 공작원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하더라도 북한당국은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지난 1983년 미얀마의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하던 남한의 고위관료들이 북한의 폭탄테러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미얀마 정부는 도망치던 북한 공작원 두 명을 체포해서 실형을 선고했고, 북한과는 외교관계까지 단절했습니다.

지난 1987년 북한은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한항공 858기를 폭탄 테러했습니다. 중동에서 체포된 두 명의 북한 공작원 가운데 한 명은 현장에서 자살했고, 역시 자살을 시도했던 김현희는 생포되었습니다. 남한사회의 실상을 접하면서 북한당국에게 속았었다는 것을 깨달은 김현희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전향해서, 지금은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잘 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 두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도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과거 남한의 좌파정권 시절, 대한항공 폭파가 남한정부의 날조극이라는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북한이고 보면, 이번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순수하게 범행을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과거의 사례를 토대로, 국제사회 역시, 결백하다는 북한의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유엔안보리가 일방적으로 남한의 조사결과만을 토대로 논의해서는 안된다고 협박하지만, 이 역시 국제사회의 상식을 모르는 궤변에 불과합니다. 일단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처리는 모두 증거에 의존해서 진행됩니다. 범인이 자백을 하면 형량을 감해주기는 하겠지만 범죄자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습니까? 유엔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김정일 정권의 자백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점철된 북한 지도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나라는 세상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