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2월 하순에 북경에서 가졌던 3차 회담의 결과가 지난 2월 29일 발표되었습니다. 이번 합의에 대해 일부에서는 김정은 등장 후에 북한의 정책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미 김정일 생전에 큰 틀에서의 합의가 있었고, 그의 사망으로 일시 중단됐던 회담이 재개되어 마무리를 작업을 거쳐서, 그 결과가 발표된 것에 불과합니다. 선대의 유훈을 관철하고 유산을 지켜야 하는 김정은이 자기 생각을 독단적으로 관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나이 서른도 안된 그가 자신만의 국정철학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저는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의미를 남한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거둔 결실이라는 점에 두고 싶습니다. 남한의 소위 '원칙있는 대북정책'과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상호 보완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북한정권을 압박해서 거둔 소중한 결실인 것입니다.
남한의 원칙있는 대북정책이란 과거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처럼 북한정권에게 퍼주면서 끌려다니는 정책, 다시 말해서, 돈주고 뺨맞는 그런 정책이 아니라 북한에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는 자신있고 당당한 대북정책입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지를 먼저 행동으로 보여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미국이 이런 입장을 고수한 것은 합의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북한의 파행적인 행태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는 경제·외교적으로 일정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제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합의의 두 번째 의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입니다. 양측의 합의문 어디에도 핵무기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핵과 미사일 실험도 완전히 중단한 것이 아니라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가 사찰을 실시하는 대상도 영변지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제3의 장소에서 진행되고 있을 핵개발 활동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미국의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번 합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작은 첫 일보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북한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합의위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서 김정은이 "대화가 가능한 유연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과거와 같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미끼를 활용해서 최대한 얻어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지원 제의를 묵살함으로써 남한을 배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식의 구태의연한 전략은 시간이 갈수록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어느 나라도 남한 정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남한의 국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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