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81세 오극렬, 28세 김정은 앞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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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의 평양대극장에서 재미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국제 여성의 날 기념 음악회에 북한 지도부가 참석했는데, 일부 간부와 가족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방영된 것입니다.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최고 지도자가 참석한 공개행사에서 직접 노래까지 부른 것은 과거에는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장면이라고 합니다. 이는 대중과 지도자와의 관계가 훨씬 친밀한 남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남한에서는 대중 정치인들이 국민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혹은 선거유세를 하면서 재미있게 애기를 하거나 때로는 노래를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이 함께 참석한 행사에서 고위 관료의 가족이 대통령 앞에 나와 노래를 한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아니라 해당 관료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관료 혼자 나와서 노래를 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가족이 함께 나오는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번 행사에서 더욱 시선을 끈 것은 올해 81세인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윈장이 가족과 함께 '나의 사랑 나의 행복'이란 노래를 부른 모습입니다. 옆에 부인으로 보이는 비슷한 연배의 여성과 손을 맞잡고 노래하는 모습이 남한 동포들의 눈에는 아주 불편해보였습니다. 남한의 한 일간지에는 오극렬 가족이 노래하는 모습과 김정은이 장성택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음악회를 관람하는 모습이 같이 실렸습니다. "81세는 부동자세로 노래하는 데 28세는 앉아서 박장대소한다"는 설명기사와 함께 말입니다.

요즘 북한 새 지도자의 행보를 보면 과거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고 난후 3년 상을 치르면서 공개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아버지 세대의 원로들을 각별하게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본인의 속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겉으로라도 상주로서 부친의 사망을 슬퍼하는 모습, 당과 군의 원로들을 대접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루가 멀게 군부대를 분주하게 다니면서 항상 환하게 웃고 박장대소하는 모습뿐입니다. 주민들과 과감하게 신체를 접촉하면서 친근감을 과시하는 모습도 연출하고 있지요. 따라서 북한 밖의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이 왜 저렇게 웃고 다니는지 궁금해합니다. 부친상을 당한지 100일도 안돼서 저렇게 웃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의문인 겁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김정일에 비해 불안하기 때문에 내부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 일부러 억지 연출을 한다고 분석합니다. 하여튼 김정은의 유별난 행동을 볼 때, 지금의 북한 지도부가 과거와 다르게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