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북한 정권의 친중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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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또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5월 20일 새벽 투먼에 도착한 김정일 일행은 무단장과 장춘을 거쳐 22일에 남쪽지방 양저우에 도착했습니다. 장춘에서 양저우까지 무려 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기차로 29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 것입니다. 양저우는 강택민 전 주석의 고향입니다. 김정일이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밤을 새워 양저우까지 달려간 것은 강택민을 만나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번 김정일의 방중이 1년 새에 세 번째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일곱 차례 중국을 방문했는데, 작년 5월과 8월에 이어 이번에 또 방문한 것입니다. 방중 일정이 베일에 가려진 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상해 근처 양주까지 급박하게 달려간 김정일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심정이 그만큼 답답하고 급할 것이라는 점을 헤아려봅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2012년이 이제 반 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입만 열면 외쳐대는 주민생활 향상은 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어린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웠지만 선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권력승계의 앞날도 불안합니다.

남한 정부를 어르고 뺨때리면서 길들이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유엔의 제재뿐입니다.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서 6·15 공동선언을 통해서 지난 10년간 쌓아 올렸던 대남선동의 공든 탑마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지금 남한의 여론은 북한 정권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성토로 들끓고 있습니다.

북한이 처한 지금의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면초가' 그 자체입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기사회생할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앞뒤, 좌우, 위아래가 꽉 막혀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지혜로운 지도자라면 자신과 그 주변을 돌아볼 것입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자신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부터 변화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중국식 개혁개방의 바탕에는 바로 이런 정신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시 외부로 도움의 손길을 뻗치며 중국으로 달려갔습니다. 입으로는 주체를 외치지만 가장 비주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양저우로 달려가던 22일 일본에서는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과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회담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원자바오는 김정일을 초청한 이유에 대해 "중국의 발전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들의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원자바오의 이 말은 보통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할 때나 부모가 철부지 자식을 가르칠 때 쓸법한 표현입니다. 참으로 중국의 거만함이 듬뿍 묻어나는 발언인 것입니다. 북한 매체가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어떻게 선전하든, 이번 김정일의 방중 목적은 중국에게 한 수 배우러 간 것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