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정권유지에 어린이 이용하는 북한

0:00 / 0:00

북한에서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전국 각지에서 2만여 명의 소년단원들을 선발,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평양으로 초청하고 자축행사를 가졌습니다.

북한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소년단 창립을 꺾어지는 해도 아닌 66주년을 기념해서 이처럼 성대하게 치루는 이유는 단 하나, 정권유지를 위해서입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고 체제를 장악하기 위한 정치행사인 것입니다. 호언장담하던 강성대국의 문도 열지 못하고 김정일의 유산인 미사일 발사도 실패했으며 극심한 가뭄으로 민심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분위기를 다잡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충성도가 높은 일반대중의 자식들을 골라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당의 방침이 살아있음을 사회 저변에 확산시키겠다는 계산도 있습니다. 귀여운 내 자식을 비행기까지 동원해서 평양으로 불러들여 환대해주는 데 그런 지도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북한 주민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인 것인데, 아이들까지 정권유지에 동원하는 북한체제가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김정은은 축하연설에서 인민군과 청년동맹이 선군혁명의 척후대라면 소년단은 그 후비대라고 했습니다. 수백만 소년혁명가들의 대부대가 있는 선군조선의 앞날은 창창하다고도 했습니다. 아직도 부모 슬하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같은 또래 친구들과 마음껏 장난치며 놀아야 정상인 아이들을 혁명의 전사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북한 정권이 동포들을 정권유지의 도구나 부속품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만 여명의 어린이들을 평양으로 불러 모으는 데는 비용도 꽤 들었을 텐데, 없는 살림에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대규모 행사를 하는 것은 김정은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라고 판단됩니다.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혁명의식과 충성심을 고취시켜서 미래의 권력기반을 탄탄히 다지겠다는 것이지요.

사실 소년단원들은 김정은과 한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세대로서 현재의 권력기반은 아니지만 미래 권력의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세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이들의 마음속에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감정을 주입시키는 것이 장기집권의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결국 소년단 행사는 김정은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한 만큼 빼먹을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에 출생한 이들은 흔히 장마당 세대라고 합니다. 배급제가 끊기고 아사자가 속출하는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부모들이 장마당에 나가 돈 버는 모습을 보며 자랐답니다. 성장과정에서 당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던 만큼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군요. 소년단 창립 기념행사는 23년 전인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88 서울올림픽’에 자극받은 북한 정권이 남북경쟁에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벌인 이 축전으로 북한은 많은 재원을 낭비했고,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번 소년단 행사가 앞으로 북한사회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