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요즘 ‘생눈길을 헤치는 정신’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6일자 노동신문은 장문의 사설을 싣고 생눈길을 헤치는 정신으로 창조하며 승리해나가자고 북한 동포들을 독려했습니다. 독재체제와 민주주의체제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잣대의 하나가 그 사회에 정치선전구호가 난무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과거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나 모택동 시대의 중국을 회상하면, 거리마다 정치선전구호를 새긴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오늘날 모스크바나 북경에서 그런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치구호 대신에 이제는 각종 상품을 선전하고 값싸게 물건을 판다는 홍보물로 가득 차 있지요. 간혹 비쳐지는 평양의 모습은 모택동 시대의 북경을 연상케 하는 구호가 즐비하게 걸려 있더군요.
북한의 역대 정권은 선전선동의 귀재들처럼 정치선전구호를 잘 활용해왔습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백두의 혁명정신, 천리마, 속도전 정신이, 김정일 시대에는 고난의 행군과 혁명적 군인 정신이 중요한 선전구호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3대째에 이르러서 ‘생눈길을 헤치는 정신’이 소개되었습니다.
생눈길을 헤치는 정신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서 마침내 원하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지금 김정은 정권이 당면한 내외의 상황을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한의 겨울처럼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힘든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처한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출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와 같습니다. 어떻게 해도 활로를 찾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부가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생눈길에 내몰린 지금의 상황은 전적으로 북한 지도부가 자초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북한이 고통을 당하는 원인은 남한도 미국도 세계도 아닙니다. 북한의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 망해서 사라져버린 공산주의를 선택한 것이 원초적인 죄악이었고, 그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개혁하고 변화하려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이 또 다른 불행입니다.
저는 북한 동포들이 생눈길을 걸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다만 그것은 마치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이 북한 동포들이 스스로 깨우치고 변화해야만 가능하다는 점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