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김정일, 인민의 이익을 언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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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한의 일간지에 김정일 위원장의 인터뷰 기사가 소개되었습니다. 10월 13일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과 가진 인터뷰인데, 러시아와 북한 간에 가스관과 철도를 연결하고 경제협력을 하는 것이 "두 나라 인민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공동인식이 이룩되었다"고 김정일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민의 이익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기에 저는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의 지도자들은 소위 '현지지도'라는 행사를 통해서 평양의 고위층이 인민의 생활향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써 왔습니다. 최근에도 김정일은 돼지농장 등 인민생활에 직결된 장소를 방문하면서 생산을 독려하고 있지요. 북한이 매년 초에 발표하는 신년공동사설에 '인민생활 향상'이란 항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북한 지도층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들의 생활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은 북한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체제 자체가 '전체를 위한다'는 이름 아래, 개인의 이윤추구를 제한하고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꺾는 체제이기 때문에 활발한 경제활동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의 경제질서로 자리잡은 주된 이유는 바로 사람 개개인의 자유와 자기개발 그리고 활발한 상거래를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친화적인 제도인 것이지요.

북한과 러시아를 관통하는 철도와 가스관 연결 사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제안했던 방안이지만 북한 때문에 실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러시아가 경제가 피폐할 대로 피폐한 북한과 철도·가스관을 연결해서 무슨 이익을 보겠습니까? 이 사업은 남한과 러시아를 연결해줌으로써, 러시아 극동지방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남한의 수출품이 러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여는 사업입니다. 북한을 거쳐 중국을 통해 유럽으로 나가는 철도연결사업도 이미 제안된 바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업이 성사된다면 북한에게는 연결통로를 빌려주는 대가가 지불될 것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땅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챙기는 셈이지죠. 하지만 이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당연히 현금을 달라고 하겠지만,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게 임대료 명목으로 현금을 주는 것은 결의안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란에 빠진 것이 현재 북한이 처한 입장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진정으로 인민의 이익을 위하고 싶다면 개혁과 개방으로 나가는 길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