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황장엽과 반공검사 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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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으로 망명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지난 10월 10일 사망했습니다. 황장엽 선생은 향년 87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셨습니다. 황 선생은 지난 97년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망명하셨는데, 최고위급 인사의 북한탈출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북한 최고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김일성-김정일 체제로는 북한에 미래가 없다는 판단 하에, 북한의 허상을 알리고 남한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의 희생도 무릅쓰고 남한으로 오셨던 겁니다.

황장엽 선생은 활발한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남한동포들에게 알리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북한체제의 핵심에 있었던 분의 말씀이었기에 남한 국민들은 황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북한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황장엽 선생은 남북간의 체제대결은 남한의 승리로 끝났고, 통일은 남한이 주도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평화적으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망명 이후 북한 정권의 끊임없는 암살위협에 시달렸던 황 선생이야말로 죽는 순간까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시고 민족의 제단에 자신을 바치신 분입니다.

황장엽 선생께서 남한에 오셔서 의형제를 맺은 분이 있습니다. 바로 반공검사로 유명한 전설과 같은 존재였던 오제도 변호사이십니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의 초안을 잡으시고 간첩 잡는 검사로 유명했던 오제도 변호사는 그의 활약상을 그린 방송이 나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고, 항상 간첩의 암살위협에 시달렸던 분입니다. 남한에 온 황장엽 선생이 오제도 변호사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의기투합해서 의형제를 맺은 후 황 선생께서 오 변호사님을 형님으로 부르기로 하셨던 겁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선봉에서 주체사상을 확립한 이념가로서 김일성을 떠받들던 황장엽 선생이 공산주의 타도를 외치며 간첩 잡는 것으로 유명했던 오제도 변호사와 의형제를 맺었다는 사실은 분단의 역사가 만든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두 분의 일화는 공산주의 사상가가 자유민주주의 사상가에게 설복되었다는 뜻임과 동시에, 남북한 동포가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는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넘어 하나로 합칠 수 있다는 희망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제도 변호사님을 곁에서 모셨던 사람으로서 그 분의 인간다움과 자애로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했던 남한의 사상가 오제도 변호사님과 북한을 탈출한 황장엽 선생이 의형제를 맺고 하루빨리 평화 통일해서 도탄에 빠진 북한동포를 구해야 한다고 의기투합하셨던 겁니다.

오제도 변호사님은 지난 2001년 먼저 세상을 뜨셨습니다. 남한 건국 이래 가장 훌륭한 검사로 선정되셔서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으셨고,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셨습니다. 이제 황장엽 선생도 오 변호사님의 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남한 정부는 황선생의 민족애와 통일에 대한 열정을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고, 지난 10월 14일 태극기로 덮인 그의 시신을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했습니다. 살아생전에 의형제를 맺었던 두 분이 다시 만나서 제일 먼저 하실 일은 아마도 우리 민족에 대한 걱정과 평화통일에 대한 기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