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거주하는 중국 출신의 유명한 정치학자 데이비드 추이 박사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비밀자료를 토대로 김일성의 6·25 남침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한 논문을 썼습니다. 추이 박사는 이 논문 때문에 11년간 중국에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금년 6월에 석방되었습니다.
아직도 대다수 북한 동포들은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한국전쟁이 남한에 의한 북침전쟁이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로 하여금 외부의 소식을 접할 길이 없도록 귀를 막고 눈을 가린 결과입니다. 오로지 정권의 선전 선동에 길들여진 우리 동포들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6·25 전쟁이 김일성에 의해 계획되고 추진된 남침전쟁이라는 점을 저의 논평을 통해 여러 차례 알려드렸습니다.
6·25가 남침전쟁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자료는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소련의 각종 비밀문건이 공개되면서 6·25가 북침전쟁이었다는 북한의 선전은 사실상 무력화되었습니다. 중국의 추이 박사는 참전 당사자인 중국 인민해방군의 비밀문건을 토대로 6·25가 남침전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추이 박사는 6·25 전쟁을 김일성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주도하며 모택동의 지원 의사를 이끌어 내고, 스탈린의 재가를 받아 실행한 철저하게 계획된 전쟁이라고 규정합니다. 당시 스탈린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모택동이 김일성을 지원하자는 소련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스탈린의 보복을 받아 정권을 잃을 것을 우려했다는 겁니다. 그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관계를 회사의 사장과 지역담당자에 비유했습니다. 당시 장개석을 몰아내고 중국을 막 건설한 모택동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소련에 밉보일 경우 정권이 날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모택동이 6·25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추이 박사는 당시 상황에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남한과 중국이 역사적인 형제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중국이 남한 국민에게 끼친 상처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서, 6·25 전쟁은 가장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낸 민족의 상처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민족의 분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보상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이 남한국민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추이 박사의 주장은 곧 이 전쟁을 계획하고 주도한 김일성 집단이 남한에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결국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 전쟁은 김일성이라는 소련군 대위 출신의 젊은 야심가가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총칼로 남한을 정복하려했던 반민족적인 범죄행위라는 역사적인 진실이 용기 있는 중국인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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