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연평도 피격 1주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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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은 당시 남한이 정례적으로 실시하던 호국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다 불시에 연평도를 포격했습니다. 강령반도의 개머리 포진지와 무도 해안포 기지에서 발사된 수백발의 방사포 포탄이 연평도와 인근 해역으로 떨어졌고, 900여 가구 1,700여 명이 살고 있던 서해의 조용한 섬 연평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민간인 주택 20채가 파괴되고 공공시설 여덟 곳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불시에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했지만 피해가 더 크지 않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북한의 포병 전력이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다는 뜻도 됩니다.

피격 직후 연평도를 떠났던 주민들은 작년 12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무너진 집과 생활 편의시설은 모두 복구되었고, 비상시에 연평도 주민들이 몸을 피할 방공대피소도 튼튼하게 정비했습니다. 향후 북한의 도발이 재차 발생할 경우 강력하게 응징할 수 있는 자위적인 대응전력도 보강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무슨 의도에서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건 이후에 전개된 상황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북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선 남한이 서해 5도에 대한 방위력을 대폭 증강했습니다. 연평도와 백령도의 방어능력을 늘린 것은 물론 서해5도 방어를 전담하는 서북사령부를 새로 창설하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책임을 맡겼습니다.

연평도 도발에 대응해서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를 무대로 방어훈련을 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천안함 폭침 후에 미국은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조지 워싱턴 호의 서해 진입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나 연평도 피격 후에는 중국도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로써 북한의 도발이 중국의 군사적 이익을 침해하는 중요한 선례가 남게 되었습니다.

남한 국민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서 냉철한 입장을 갖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서 일부 남한 사람들은 설마 북한이 우리를 공격했겠느냐며 반신반의했었습니다. 비겁하게 기습적으로 같은 동족을 살상하고 그런 적이 없다며 발뺌을 하겠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연평도 피격이 이런 의심을 일거에 없애버렸습니다. 백주대낮에 같은 동포를 공격하는 집단이니 야밤에 기습공격인들 못하겠느냐는 생각이 뿌리내린 것입니다.

아마 김정은은 군대의 지지를 얻고 자신의 대담성을 보여주기 위해 무모한 도발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국제사회가 북한을 마치 물가에서 노는 어린 아이처럼 위험하게 바라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