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은 자신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세습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류 역사상 독재 권력세습이 두 번이나 이뤄진 나라는 북한뿐입니다. 냉전 시대에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도 권력세습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할 때부터 김일성 국가주석과 가까운 우정관계를 맺었고, 북한식 수령 신격화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바꿔 놓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아내 엘레나는 아들 둘에 딸 하나의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 세 자녀 중 정치 무대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한 사람은 막내 아들 '니쿠'였습니다. 막내 아들 '니쿠'는 공산당 청소년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많은 국민은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술고래일 뿐 아니라 특히 성폭행과 관련된 소문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고 학력이 있고 바깥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던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경우 아버지 때보단 생활수준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진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는 1989년12월 반공산주의 혁명이 국내에서 일어나자 아버지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지키기 위해 혁명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총으로 쏴 죽이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민간인들과 루마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어 나중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니쿠'는 재판정에서 자신이 민간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진술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건강이 안 좋아 감옥에 가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는 지난 1996년 9월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1989년 12월 유혈 혁명으로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그의 아내가 사형을 당했습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25년이 넘었지만, 독재자의 막내 아들이던 '니쿠'에 관한 일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정치 탄압과 공산주의 비밀경찰에 의해 투명성이 전혀 없었고, 국민은 독재자와 그의 가족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인과 가족의 생활양식, 사생활에 대해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의 왕자인 찰스와 그의 두 아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 딸 두 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25년 후라도 독재자 막내아들에 대해서 진실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옛날 '니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신문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옛날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 자녀였고, '니쿠'와 함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방탕한 생활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지만, 그는 낭만적인 남자이며 여성 앞에서는 부끄럼 때문에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 여자들에게 말을 걸곤 했습니다. 또 그가 루마니아 사람들의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니쿠'는 자신의 부모의 독재 체제에서 루마니아 사람들이 인권 유린과 식량 위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쿠'도 부모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니쿠'의 어머니인 '엘레나'는 자식에게 너무 강했고 막내아들을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정치인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니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요 공산당 간부의 딸과 결혼 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쿠'는 어머니의 지독하고 엄격한 태도에 반항하려고 문란한 생활을 했다는 게 그의 친구들의 말입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막내 아들인 '니쿠'가 아버지와 같은 잔인하고 국민의 고통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원래 좋은 사람인데, 부모의 욕망과 엄격한 감시와 지독한 교육 때문에 너무나 불행해서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사람이었을까요?
아마도 사실을 확실히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너무 지독해도 막내 아들로서 독재자와 아내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노력만 했었더라면 부모에게 루마니아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길로 왜 나가고 싶은 지 충분히 이해를 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설립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유혈적 혁명과 국민들의 희생 없이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체제로 바꿔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니쿠'의 역사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 기회를 놓쳐서 루마니아 역사에 있어 아무 유산도 의미도 없는 인물이 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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