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자유를 상징하는 청바지

0:00 / 0:00

인류의 역사상 가장 인기 좋고, 가장 널리 퍼졌으며, 가장 많이 팔린 옷은 청바지입니다. 청바지는 미국의 특징인 자유와 기업가 정신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청바지는 미국의 유명 기업가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1873년에 처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서부 금광에서 일하던 광부를 위한 옷이었습니다.

거친 노동을 하면서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청바지는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건설과 철도 노동자, 또는 농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제2차 대전 때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이긴 미국 군인들이 휴식과 휴가 때 군복을 안 입고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미국이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서유럽에서 미국의 자유로운 정신을 상징하는 청바지가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의 청소년들은 록 음악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젊음의 자유를 상징하는 옷으로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유명한 옷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 회사는 청바지를 고급 명품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회사인 '리바이스'를 포함하여 요즘은 값이 비싼 명품 청바지와 값이 저렴한 청바지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에 청바지는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국가 젊은이들에겐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하던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루마니아 젊은이들은 암시장에서 구입한 미국산 청바지를 입으면서, 또 암시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서구 록 음악 음반을 들으면서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루마니아 섬유 공장들도 청바지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국산 청바지는 루마니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그리 좋진 않았습니다. 옛날 공산주의 시대에 역시 루마니아에서도 다른 동유럽나라들처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가장 좋았던 청바지는 미제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은 교복을 입어야 했었지만, 반항하는 고등학생들은 상의는 그대로 교복에 하의는 청바지를 맞춰 입기도 하여 학교에서 야단을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베를린의 장벽이 동서 독일의 분단, 또는 공산주의 독재와 자유민주주의의 분단을 상징했습니다. 1989년 11월 동서 독일 젊은이들이 망치를 들고 베를린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때 청바지를 입으며 장벽을 무너뜨린 동서독 젊은이들의 모습을 동서독의 통일을 기념할 때마다 TV화면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약 6년전에 자유와 자본주의 생활 양식을 상징하는 청바지가 북한에서도 생산될 계획이 있었습니다. '노코'라는 스웨리예 (스웨덴) 청바지 업체가 북한에 투자하여 청바지 1천1백 벌을 생산했습니다. '노코' 청바지는 북한 내에서 팔리진 않고, 수출만 목표로 했습니다. '노코' 청바지는 짧은 시간 동안 스웨리예에서 팔리곤 했지만, 스웨리예 시민 단체에 반대에 의해 북한 내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권을 존중하는 스웨리예 소비자들이 독재가 심하며 정치범 관리소를 운영하는 북한에서 생산된 청바지를 도덕적, 윤리적 이유 때문에 입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지하려고 하면서도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고 외부의 정치. 사회 영향을 막으려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청바지뿐만 아니라, 편의점, 생맥주, 맥주집, 햄버거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상징들이 북한에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2만 여명이 수감되어 있는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하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1세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국제기업과 소비자들이 인권유린 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