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화해의 교황'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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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6년전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복후 천주교 최고의 영예인 성인 반열에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이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인 바티칸 궁전 근처에 수십개국에서 온 100만명 가까운 천주교 신자들이 모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1989년말 자유를 얻은 동유럽 사람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22년 전인 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국민들의 시위로 무너졌습니다. 동유럽 나라 국민들이 반세기 가까이 지속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자유를 되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있었습니다. 동유럽 사람들은 특히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폴란드 자유노동조합을 설립한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자유의 전사'로 기억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27년 가까이 천주교의 지도자 겸 정신적 지도자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는 2005년 4월 2일 84세로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4월 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의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가 순교하고 묻힌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당시 2005년 4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습니다. 수십 개국에서 온 수백만 명이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천주교의 중심지인 바티칸이 있는 로마로 성지 순례를 했습니다. 그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인류의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카롤 요세프 보이틸라'라는 이름으로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롤 보이틸라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 누나와 형을 잃는 비극을 겪었고, 제2차대전, 나치 수용소와 유태인들의 대학살, 모국인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의 침략을 당하는 사태까지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카롤 보이틸라는 조국에서 천주교 신부, 신학자와 추기경을 역임하다 1978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그를 천주교 교황으로 선택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온 세계 천주교 신자들을 지혜롭게 지도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1981년 교황은 암살자의 총에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기적과 가까운 생존을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암살이 불발로 그친 지 2년 후 교황은 감옥에 갇힌 암살범을 직접 만나 용서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특히 동유럽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인물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해외여행의 목적지는 바로 모국 폴란드였습니다. 1979년 교황이 폴란드를 방문할 때 수백만 명이 교황을 보러 나왔습니다. 그 순간은 동유럽의 어둡고 희망이 없었던 당시 분위기와 많이 달랐습니다.

루마니아와 같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는 군중이 강제로 독재자를 숭배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교황이 폴란드를 방문할 때 폴란드 사람들은 그를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순수한 영웅으로 여겼습니다. 교황은 폴란드 국민에게 예수와 믿음,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종교는 폴란드 사람들의 국민성을 형성했기 때문에, 폴란드 사람들이 교황의 설교를 들으면서 국민성을 다시 되찾게 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향으로 조선소에서 일하던 레흐 바웬사와 다른 폴란드 노동자들은 자유노조를 설립해 80년대 후반까지 반공산주의 운동을 힘차게 추진해 폴란드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폴란드에 이어 다른 동유럽 민족들이 무혈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89년 말 공산주의 독재와 인권 유린이 가장 심하던 루마니아에서도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독재 체제를 와해시켰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00개국을 넘게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자신의 모국이자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뿐만 아니라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집권했던 쿠바까지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독재자들을 직접 만나며 그 나라 국민에게 인권과 종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계 인권을 선전하며 과거에 천주교와 충돌한 종교들과 화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유태인 회당과 이슬람교 사원을 처음으로 방문한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였습니다.

그는 1999년 루마니아를 방문하면서 11세기에 천주교와 분리된 정교회 나라의 땅을 처음으로 밟은 천주교 교황이었습니다. 십자군전쟁과 중세시대의 종교 재판부터 유태인 탄압까지 천주교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는 하느님과 세계 민족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화해의 교황'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삼십대 이후의 동유럽 사람들은 교황을 동유럽을 공산주의 독재에서 이들을 해방시킨 영웅으로서 소중히 여깁니다.

2009년 2월에 돌아가신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은 2005년 4월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 앞에 모인 수천 명 앞에서 교황의 추모 미사를 지내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 한국을 두 번 방문할 때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교황이 김 추기경의 손을 잡고, "김 추기경과 나만이 알고 나누는 말"이라며 "나는 한국을, 특히 북한을 늘 마음에 두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기도하셨듯 많은 사람들의 북한을 위한 기도와 소원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언젠가 북한 사람들도 동유럽 사람들처럼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까지 포함해 한민족의 순수한 민족성을 되찾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