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저항과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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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혈 혁명이나 유혈 혁명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 , 벌가리아, 뽈스까,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 사람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려 개혁과 개방, 자유와 경제개발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씨 일가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과 개방을 계속 거부해 왔습니다. 중세시대 왕국처럼 북한을 지배하는 김씨 일가는 1994년과 2011년 권력세습을 두 번이나 이뤘습니다. 량 권 제도가 1990년대중반부터 무너져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많은 북한 주민들이 탈북했습니다. 2001년 1,044명, 2002년 1,143명, 2003년 1,282명, 2004년 1,896명, 2005년 1,332명, 2006년 2,022명, 2007년 2,548명, 2008년 2,804명, 2009년 2,929명, 2010년 2,402명, 2011년 2,706명, 2012년 1,509명이 탈북했습니다. 현재 탈북자 2만5천여 명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도 공식적으로 5천여명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의 땅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독재 국가의 정치탄압, 인권 유린과 중앙계획 경제에 의한 경제적 어려움에 더 이상 못 참는 사람들의 대안은 반란 또는 망명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냉전시대에 공산주의 독재를 반발하던 동유럽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뽈스까나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애국자들은 산이나 숲 속에 숨어 1950년대까지 총을 들고 비밀 경찰과 싸웠습니다. 마쟈르에서도 1956년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1968년 무혈 반공산주의 혁명이던 '프라하의 봄'때 체스꼬슬로벤스꼬 사람들도 개혁 정책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 동유럽 독재자들의 절대 권력 때문에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반군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비밀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 희생되고, 사망하지 않아도 공산주의 강제 노동 수용소나 교도소에서 수십 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공산주의 독재 체제하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망명의 길뿐이었습니다.

루마니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루마니아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주로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루마니아내 외국 대사관에 이민을 신청하는 것; 둘째,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가는 것; 셋째, 해외 출장이나 해외 여행을 가서 다시 귀국하지 않고, 외국에서 거주 신청을 하는 것. 이 세 방법은 나름대로 위험한 점이 있었습니다. 결국 1980년말에는 외국에서 살려는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남은 방법은 국경을 불법으로 넘는 것 단 한가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루마니아 군인들은 망명하려는 사람들을 무조건 사살 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려다 희생되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젊은 사람들은 다뉴브강을 건너 유고슬라비아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익사하거나 총을 맞아 사망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졌던 루마니아 사람들은 망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유명한 학자, 예술가, 음악가, 운동 선수와 감독들이 외국에서 반공산주의 운동을 하면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공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다른 동유럽 나라들의 망명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89년 가을에 오스트리아와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가 수만여 동도이췰란드 피난민들에게 입국을 허가해 이들이 쉽게 민주주의 국가이던 서도이췰란드로 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 시대의 분단을 상징했던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체제하에 살던 사람들이 해방을 맞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탈북자들의 경우는 다른 동구권 나라보다 동도이췰란드 사람들의 경우와 가장 비슷합니다. 탈 북의 길은 너무나 위험하고, 북한에 남아 있는 탈북자의 가족들의 상황은 어려울 것입니다. 또 북한에서 태어나 공산주의 독재 체제하에 살다가 갑자기 민주주의, 자유 시장과 경쟁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 중 피아니스트 김철웅씨는 한국에서 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화가 송벽도씨는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애란씨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얻어 젊은 탈북자들을 학원에서 교육 시키고 있고, 한국대외경제정책연구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조명철씨는 현재 한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 정부기관과 비 정부기관, 대학이나 연구소, 국회까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같은 나라인 한국으로 입국하면, 적응 과정이 쉽지 않아도 결국 같은 민족의 생활 양식에 익숙해져 성공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