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인 1946년 3월 5일 제2차 대전때 영국의 수상이던 윈스턴 처칠은 미국 미주리주 풀턴시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으며 감동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에서 처칠은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미국, 영국, 러시아와 다른 연합군들의 희생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처칠의 연설은 당시 떠오르던 또 다른 위협, 즉 소련 공산제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습니다.
바로 그 연설에서 자유민주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독재 세계를 분단시킨 그의 유명한 '철의 장막'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쓰게되었습니다. 그 연설에서 처칠은 유럽에 '철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으며, 중유럽의 도시인 폴란드 바르샤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고슬라비아 벨그라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와 불가리아 소피아는 소련 영향권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미국이 주도한 자유세계와 소련이 지배한 공산주의 독재 세계의 대립을 배경으로 하는 냉전시대는 1946년 3월 5일 처칠의 연설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시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처칠의 연설은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눈뜨게 했습니다. 1945년 4월부터 1946년 3월까지 자유세계는 수 천만 명을 살해한 히틀러와 나치가 무너진 것을 기념했지만, 2차대전때 연합국 일원이었던 공산 소련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동유럽을 붉은 식민지로 변화시켰습니다. 소련의 군화발에 짓밟힌 동유럽 사람들은 1946년부터 1989년까지 무려 45년 동안이나 공산주의 독재, 인권 유린과 공산주의 중앙계획에 의한 경제 위기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냉전 시대 때 문명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미국과 소련간의 핵군비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핵경쟁이 가장 위험했던 시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습니다.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1일 사이의 미국과 구소련간의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려다 미국과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당시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의 지혜로운 위기관리덕분에 제3차 대전, 또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하의 경제, 정치, 사회적 실패로 인해 소련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던 1989년 중유럽의 공산주의 독재는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서 분단을 상징하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체코슬로바키아에선 평화적인 변화가 이뤄졌고, 루마니아에서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희생하면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 체제를 유혈 혁명으로 무너뜨렸습니다.
1990년대 동유럽 나라들은 쉽지 않은 전환기를 겪어야 했고,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지독한 전쟁까지 겪고 말았습니다. 결국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와 발트 3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2007년 1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까지 합류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향한 개혁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때 공산체제였던 이들은 오늘날 자유민주국으로 변해 당당히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처칠의 '철의 장막' 연설 65년 후, 또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22년 후,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시대의 유물은 이제 쿠바와 북한밖에 없습니다.
당시 79세인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5년전 건강이 좋지 않아 남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당시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넘겼습니다. 북한에도 지난 2년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건강이상설'이 많았으며16년 전 이뤄진 2대 세습이 이제 '3대 세습'으로 이어질수 있다는 전망을 할 때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뿐만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는 중세시대의 왕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철의 장막' 연설 65년후, 남북한이 분단된지 63년후, 한국전쟁이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지 61년후인 지금 한반도에서도 '철의 장막'을 거둬올릴 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려면 북한이 우선 이웃나라를 위협하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북한 주민들을 더이상 탄압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북한 당국은 21세기 기본적 권리인 인권보장,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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