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의 사망 20주년이었습니다. 북한 내 소식통의 보도를 인용한 한국언론매체에 의하면 방부 처리된 지 20년 후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과 함께 금수산 기념궁전에 안치되어 있는 김일성의 미라가 부패하고 있다고 합니다. 금수산 기념궁전을 자주 방문하는 북한 주민들에 의한 이러한 김일성 미라 부패설은 북한 국가주석의 미라가 축소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북한 내 소식통과 전문가들에 의하면 김일성 미라를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년동안 미화 1천700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2만2천708달러인 한국에서 이 금액은 대단한 액수가 아니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165배나 작은 137달러의 국민소득을 가진 북한 주민들에게 이것은 상상 조차 못할 정도의 엄청난 돈입니다. 김씨 일가 정권이 김일성과 김정일 미라를 보존하는 데 그렇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금수산 기념궁전이 김씨 일가의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북한 세습권력독재 체제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두 독재자의 미라가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 아닙니다. 냉전시대에 이러한 경우가 구 소련에도 있었습니다.
독재자들은 국민의 고통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이들을 지배하면서 항상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습니다. 그러한 독재자들은 커다란 궁전과 동상을 세워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 합니다. 더 구체적인 사례는 구 소련의 레닌이나 스탈린, 유고의 티토, 윁남 (베트남)의 호지민이나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처럼 죽은 후에 자신의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일, 세습 체제를 이룩하는 일 등이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레닌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는 웅장한 무덤을 로씨야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의 유명한 '붉은 광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24년 레닌 사망 당시 그의 시신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방부 처리되었습니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소련의 악명 높은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미라도 레닌 미라 옆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정권은 스탈린 정권의 특징이던 강제수용소와 극심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물론 흐루시초프도 개혁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전 독재자이던 스탈린을 비판했습니다. 흐루시초프도 소련과 동유럽 사람을 공산주의 노예 제도에서 해방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며 스탈린의 미라를 레닌의 웅장한 무덤으로부터 크렘린 궁전에 있는 다른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붉은 제국이던 소련이 무너진 지 23년이 지났지만, '공산주의 아버지'인 레닌의 미라는 아직까지 '붉은 광장'의 기념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로씨야 에서는 레닌의 미라를 더는 방부 처리하지 말고 땅에 묻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개인숭배를 위해 많은 돈을 낭비하고 국민들을 굶기면서 금수산 궁전, 다른 커다란 건물과 대 광장을 건설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옛날 '피라미드'를 지은 '파라오,' 즉 고대 이집트 왕처럼 자신이 사망한 후에도 자신의 유산과 개인숭배가 남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라는 다른 나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옛날 이집트 '파라오' 미라처럼 작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주민들을 굶기고 탄압한 독재자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역사의 심판도 벗어날 순 없습니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을 고대 이집트 왕처럼 방부 처리하는 일에 많은 돈을 들이기보다는 국민의 복지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입니다. 북한은 두 독재자의 미라가 상징하는 탄압과 굶주림의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개혁과 개방을 고려해야 할 시기가 급속히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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