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독재체제를 등진 고위 망명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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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에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언론 검열로 인해 공산주의 국가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일반 사람들이 받는 실제 고통은 쉽게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민주주의 국가로 망명한 동유럽 사람들의 증언은 아주 귀중한 정보였습니다. 특히 고위층 망명객의 보고는 더욱 그랬습니다.

2004년 당시 74세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디시에서 사망한 폴란드 군출신 리차르드 쿠클리느스키 대령은 가장 유명한 동유럽 망명객중 한명이었습니다. 냉전 시절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1970년부터 서유럽과 미국의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폴란드와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었습니다. 1981년 12월 북한에서는 '뽈스까'라 불리는 폴란드에서 노동조합에 의한 반공산주의 운동이 심해진후 폴란드 공산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기 직전 쿠클리느스키 대령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쿠클리느스키 대령이 망명한 후 폴란드 공산정부는 그에 대한 궐석재판을 통해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폴란드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체제가 등장하자 쿠클린스키 대령은 다시 권리를 회복했을 뿐만아니라 영웅으로 인정돼 훈장도 받았습니다.

냉전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하던 동유럽 나라 북한에서는 '로므니아'라 불리는 저의 조국인 루마니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차우체스쿠 공산독재주의 국가의 해외정보국 대장이던 미하이 파체파 장군은 1978년 서독으로 출장을 갔는데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사실 그는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가 가장 많이 믿었던 측근중 한명이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와 그의 아내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후 놀라운 사실을 많이 폭로했습니다. 미국 망명에 성공한 파체파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우체스쿠 정권의 인권유린, 정치탄압과 모든 악행들을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파체파 장군의 망명은 차우체스쿠 독재 정권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파체파 장군을 완전히 믿었었는데, 파체파의 망명으로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 차우체스쿠는 그때부터 배신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71년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식 개인숭배를 이미 건설중이던 차우체스쿠는 파체파 장군 망명 사건 이후 정부 기관의 대다수 요직들을 자신의 가족들과 친척들을 기용하는등 주요 권력을 가족, 친척에게 나누어 루마니아를 완전한 독재자 개인 숭배 국가와 1인 국가로 만들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차우체스쿠의 행동에 루마니아 공산당 내부에서도 자기 가족,친척들만 챙겨대는 독재자에 대한 불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말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공산당 고위 관리들은 루마니아의 독재자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또 반공산주의 혁명이후로 루마니아가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하여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 향하는 전환기에 공산주의 시대에 고위관리이던 많은 사람들이 루마니아의 새로운 기업가와 억망장자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공평한 과정은 아니었겠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전 공산당 고위관리직에 있던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1978년 미국으로 망명한 니콜라에 파체파 루마니아 정보 장군은 1980년대 '붉은 지평'이라는 책에서 차우체스쿠의 생각, 사고 방식과 행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폭로했습니다. 파체파 장군의 '붉은 지평'은 차우체스쿠가 가장 두려워했던 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비밀 경찰은 온갖 수단을 다해 이 책이 루마니아로 흘러드는 것을 막았습니다. 저도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는 그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지만, 집에서 몰래 듣던 '자유유럽방송'이나 '미국의 목소리'와 같은 외국방송을 통해 그책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붉은 지평'에 따르면, 차우체스쿠와 그의 아내는 밀고자와 도청을 통해 루마니아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특히 차우체스쿠의 아내인 엘레나는 매우 지독하여 당 간부들의 사생활과 연애 사건은 물론 부부관계까지 직접 감시하는 것이 취미였다는 것입니다. 루마니아 비밀 요원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외국에서 마약을 밀매하고 무기를 밀수입 하곤 했는데 '붉은 지평'에서 파체파 장군은 이들이 악명 높은 국제 테러리스트와 연계해 움직인다는 사실도 폭로했습니다.

북한의 고위급 망명자라 하면 남한에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주체 사상의 입안자로 알려진 황장엽씨는 남한으로 망명한 후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의 인권 유린과 관련 된 많은 사실을 폭로해왔습니다. 여러번 미국을 방문한 황장엽씨가 북한의 현 상황은 과거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체제보다 10배는 더 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서울에서 황장엽씨가 개인 연구소인 '민주주의 정치 철학 연구소' 출범식을 가졌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의 인민들을 굶겨 죽이고 인권을 유린하는 생지옥을 만들고 식량배급마저 유지 못해 시장 경제의 문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독재의 산물이지 외국 원조의 산물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차우체스쿠의 독재정권하에 자랐던 저는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등진 고위급 망명객들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중에 한사람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독재정권하에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목숨을 걸고 자유세계로 망명하는 까닭은 일신의 영달을 찾기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 인권인 선택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