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인류역사를 바꾼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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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초만 되면 1989년 가을이 생각납니다. 그 해 10월과 11월 불과 두 달새, 독일은 분단 40년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다른 동구권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동유럽 민족들의 교도소'라 불리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붕괴된 지 25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저는 그 당시 냉전시대 때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한 사악한 공산주의독재 국가이던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꾸레슈띠 (부카레스트) 대학 영어영문과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김일성 전 국가주석과 친밀했던 차우셰스쿠 독재정부의 언론검열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국내 방송을 통해서는 해외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전력난 때문에 단 하나뿐이던 텔레비전 방송국도 매일 저녁 2시간밖에 방송하지 않았고, 그나마 그 짧은 시간에 방송된 것도 주로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관련된 뉴스와 독재자와 그의 아내인 엘레나 차우셰스쿠를 위한 연주회나 독주회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9월부터 루마니아 사람들도 동구권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나마 외국의 단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바깥세계의 좋은 소식을 하나 둘씩 들으면서 루마니아도 어쩌면 개방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웃사람에게 들킬 까봐 라디오 소리를 바싹 줄인 채 외할아버지와 함께 바깥세계의 희망의 소식을 듣곤 했습니다. 당시 들었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1987년 6월 12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베를린 장벽' 연설이었습니다. 냉전 시대 때 베를린은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서 베를린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서독에 속했지만, 지리적으로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동독 영토가 둘러쌓은 자유섬이었습니다. 동독 공산주의 독재 정부가 자유 도시인 서 베를린으로의 탈출을 막기 위해 1961년 베를린의 장벽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베를린 장벽은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서유럽과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동유럽의 분단을 상징했습니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 서 베를린을 방문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유명한 '베를린 장벽' 연설에서 구소련의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국가 수반 겸 공산당 서기장에게 '그 장벽을 빨리 없애라'라고 촉구했습니다.

저는 당시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의 비밀 경찰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해외방송에서 들었던 이런 내용을 누구한테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족끼리 혹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늘상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며 가장 친한 친구도 믿지 말라 했습니다. 그런 불안과 공포는 공산주의 독재의 탄압을 직접 겪은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의 복도 곳곳에서는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독일의 통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독일 통일의 현장을 볼 수는 없었기에 서로 하나가 된 독일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저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망치를 들고 베를린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수천여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 말입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때는 분명 젊은이들의 가을이었습니다. 나이든 우리들의 부모세대는 그저 시절을 비관했지만 동구권의 젊은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했던 것입니다. 그 해 가을 독일에서 루마니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구권의 젊은이들은 확실히 인류 역사의 한 순간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동서독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25년후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 출신입니다. 메르켈 총리는 서독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설교 활동을 하던 부모와 함께 동독으로 이주해 1989년까지 동독에서 살았습니다. 동독 출신 정치인이 총리로 선출되어 통일된 독일을 지도하는 것처럼 남북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통일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북한 출신 정치인이 활동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