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독일 통일의 비용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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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췰란드는 해마다 10월 3일을 '도이췰란드의 통일 기념일'로 지냅니다. 24년전 도이췰란드는 분단 40년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다른 동유럽 공산주의 나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저는 로므니아의 부꾸레슈띠 대학에 다니던 영어영문학과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 국가주석으로부터 정치탄압, '주체 사상'과 독재자 개인숭배를 배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정부의 언론검열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국내 방송을 통해서는 바깥나라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전력난 때문에 하나밖에 운영되지 않았던 TV 방송국도 매일 저녁 주로 독재자를 찬양하는 연주회나 독주회를 중심으로2시간밖에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9년 9월부터 루마니아 사람들도 동유럽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나마 외국 라디오 단파 방송을 통해 바깥세계의 좋은 소식을 들으면서 루마니아도 개방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1989년 가을, 나이든 저희의 부모 세대는 그 시절을 비관하기만 했지만 동유럽 젊은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며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 해 가을 도이췰란드에서 로므니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유럽의 젊은이들은 인류 역사의 한 순간을 바꿔놓았습니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 지 24년 후 동유럽 나라들과 달리 북한은 제2의 권력세습을 이뤘으며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며 군사도발, 핵과 미사일을 통해 세계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번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북한의 통일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강대국입니다. 한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발전을 했는데 북한은 반대로 비효율적 중앙계획경제, 심한 권력세습독재와 개인숭배, 정치탄압과 인권침해에 의해 아시아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합니다.

동서도이췰란드 통일이 이뤄진 1990년 동도이췰란드 주민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서도이췰란드에 비해 40% 정도 되었습니다. 사실 냉전시대의 동서도이췰란드의 차이보다 남북한간에 경제, 사회, 정치 수준의 차이가 훨씬 더 심합니다. 그래서 동서독 도이췰란드 비용보다 남북한 통일 비용은 9배나 더 들 수도 있습니다.

도이췰란드는 통일비용이 예산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통일 후 동도이췰란드의 재건을 위한 '연대특별세,' 즉 주민들끼리의 연대감을 위한 20년간 동도이췰란드 사람들의 소득을 서도이췰란드의 70%까지 올리는 세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도이췰란드는 서도이췰란드 사람들이 낸 '연대특별세'로 모은 자금을 동도이췰란드의 재건, 도로공사와 동독 사람들에게 고용과 다른 경제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남북한의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비용의 부담을 가질 나라가 한국뿐이 아닙니다. 국제사회도 그 과정에 참여할 것입니다. 물론 북한은 통일되기 전 우선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하여야 하며 그러한 국제기구로부터 개발원조를 받으려면 주민소득통계를 포함한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경제발전을 방해하는 군사예산을 상당부분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국제기구에서 어떤 분야에 원조가 필요한지 알아 낼 수 있고, 또한 북한의 자원을 경제개발과 주민들의 생활수준의 개선을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동서도이췰란드 통일을 생각하면 그에 따르는 비용을 추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도이췰란드는 1871년에 비로소 여러 왕국으로부터 통일된 하나의 나라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1945년 분단되기 전까지 통일된 도이췰란드의 역사는 74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북한이 1948년 분단되기 전 기원후 935년부터 1,000년동안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 같은 정치체제하에서 살던 한민족이었습니다. 그 역사를 고려하면 남북한 통일의 중요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도이췰란드의 통일 비용보다 더 많이 들어도 장기적인 분단비용보다는 통일비용이 훨씬 더 적게 들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