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헝가리 자유화 혁명 5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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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북한에서 '마쟈르'라 불리는 헝가리 사람들의 반공산주의 자유화 혁명 55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헝가리, 북한에서 '뽈스까'라 불리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나라들은 소련의 군홧발에 짓밟혀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소련이 임명한 공산당 독재자와 간부들은 그 나라들의 전통과 역사를 없애려 했고, 지식인들, 정치인들과 군 장교들을 교도소와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며 소련의 독재자이던 스탈린주의적 사회. 정치. 경제 제도를 그 나라들에 이식시켰습니다.

소련이 임명한 독재자들과 비인간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처음으로 무너뜨리려고 하던 사람들은 '마쟈르 사람,' 즉 헝가리인들 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1956년 2월 니키타 흐루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스탈린 격하 발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되어 버린 동유럽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은 개방될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56년 10월 23일 20만 여명 헝가리 시민들은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 시내에 모여 소련 점령과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리자고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오후 6시까지 학생회, 작가협회까지 모여 20만 여명이 반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은 헝가리 전국으로 펴져 1956년 10월말까지 개혁주의자 '임레 나기'가 주도한 혁명세력이 집권했습니다. 임레 나기 정부는 자유 투표를 추진하고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개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소련의 정권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전 독재자이던 스탈린을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흐루시초프 또한 소련과 동유럽 사람들을 노예와 같은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56년 11월 4일 소련은 육군, 낙하산, 기갑 17 사단을 헝가리로 배치했습니다. 소련군과 전투하다 헝가리 시민들 수천 여명이 희생되고 2만5천명이 구속되었습니다. 혁명의 지도자이던 임레 나기까지 포함해 350여명 반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소련 군대에게 붙잡혀 사형을 당했습니다.

헝가리 반공산주의 혁명은 소련의 군홧발에 짓밟혀 실패했습니다. 만약 소련의 지도자가 개혁과 진보를 추진하려 했던 인물이었다면 헝가리 혁명이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956년 헝가리 혁명은 동유럽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장기적으로 헝가리 혁명 영웅들의 희생은 국민에게 깊은 의미를 주었습니다. 헝가리, 폴란드나 루마니아, 동유럽 곳곳에서 헝가리 혁명을 기리는 반체제주의자들이 1989년까지 공산주의 독재, 인권 유린과 정치 탄압을 계속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89년말까지 동유럽 나라들은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려 자유,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 사람들은 1956년 헝가리 사람들처럼 반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와해 조짐이 보이던 1989년 말 소련의 도움을 더 이상 받지 못한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구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지 22여년이 지난 지금 시장경제,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면서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독재자 개인숭배와 권력 세습을 고집 하는 냉전시대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라들은 이제 북한과 쿠바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