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유명한 루마니아 체조 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는 50세가 되었습니다. 루마니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 언론매체들은 코마네치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35년 전 1976년 7월 18일 당시14살이던 코마네치는 캐나다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코마네치는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평균대, 개인 종합, 이단 평행봉 금메달 셋, 단체 종합 은메달 하나, 마루운동 동메달 하나를 땄습니다. 코마네치는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두 개를 땄습니다. 지난 35년 동안 '완벽의 여왕'이라 불린 코마네치 이후로 여자 체조는 전 세계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 중 하나로 뽑히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6살밖에 안됐었지만, 지금도 1976년 7월 18일의 추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루마니아 사람들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하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정치 탄압, 경제 위기와 독재자 개인 숭배가 가장 심하던 1980년대보다는 상황이 좀 덜 심했습니다.
독재자는 자신의 개인숭배를 위하여 돈을 많이 낭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 중계권료를 아까워했기 때문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1976년 올림픽을 시청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독 그때는 루마니아 중앙TV방송에서 새벽부터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을 계속 중계방송 했습니다. 올림픽 체조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루마니아 시청자들 중에서 14살밖에 안된 코마네치가 체조의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진 않았을 것입니다. 코마네치는 1975년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었지만, 특히 소련의 유명한 체조 선수들에 비해 그리 유명하진 않았습니다. 그전 체조 경기에서 만점이라는 점수가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올림픽 체육관 액정표시기에 처음에는 10점이 아니라, 1점이라고 나타났습니다. 그날 코마네치는 체조의 역사를 바꿔놓으며 또 하나의 세계 스포츠 역사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봤지만, 코마네치는 세계에 알려진 루마니아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라 볼 수 있었습니다. 코마네치의 인생 또한 루마니아의 현대 역사와 같은 운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6년 올림픽에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의해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후 그녀는 루마니아 독재자와 그의 아내의 명령으로 '사회주의노동 영웅'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언론은 코마네치의 이미지를 이용해 차우셰스쿠 정권을 외국에 선전하려 했습니다.
국내에서 대규모 공산당 행사를 할 때마다 코마네치는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독재자와 그의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나중에는 독재자의 아들 니쿠가 코마네치에게 연인으로 다가가려 했기 때문에 힘들었고 코마네치의 감독이던 벨라 카롤리와 그의 아내인 마르타가1981년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국가대표팀감독이 된 후 코마네치도 독재자 비밀경찰의 심한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반공산주의 혁명 2주 전인 1989년 11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걸쳐 미국으로 망명했고 미국에 와서 1976년 올림픽 남자 체조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 바르트 코너와 1996년 결혼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미국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체조 학교를 운영하고 책을 쓰기도 하며 '세계 체조 선수'라는 잡지를 출판했습니다.
코마네치는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루마니아에 자유로이 왕래하며 루마니아 고아들과 체조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미국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나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 같은 미국 고위 인사들이 루마니아를 방문했을 때 코마네치가 루마니아 대통령과 함께 그들을 환영하는 모습이 세계뉴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50세인 코마네치는 2006년 6월, 아들을 낳으며 자신과 남편의 오래 전 꿈이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완벽의 여왕'은 자신의 가족과 세계 체조, 또한 루마니아 어린이들을 위하여 앞으로도 많은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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