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 년에 북한을 처음 방문한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는 평양의 건축과 웅장한 도로를 접하며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3년후 차우체스쿠는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슈티를 평양처럼 수만명의 군중이 모여서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도시로 바꾸려 했습니다.
또 루마니아의 수도 한복판에 20년에 걸친 루마니아 공산국가의 '신계몽주의'를 상징하는 새로운 행정본부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말이 행정본부이지 이 건물은 독재자 차우체스쿠와 공산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차우체스쿠가 루마니아의 주도권을 잡기 전인 1965년 이전만해도 15세기에 설립된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슈티는 동유럽의 '작은 파리'로 불릴 만큼 세련된 도시였습니다.
20 세기의 전반까지도 부쿠레슈트는 자랑할 만한 유럽식으로 만든 우아한 도로와 광장이 즐비한 도시였습니다. 당시에 부쿠레슈티에는 14 세기 지어진 궁전과 정교회, 성당, 몇백년된 교회, 호텔, 그리고 전통적이지만 역동적인 시장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기념물은 중세 교회와 수도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부쿠레슈티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교회의 첨탑을 보면서 길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도시 부쿠레슈티는 차우체스쿠가 집권한 이후 삭막한 도시로 변했습니다. 과대 망상증에 시달리던 차우체스쿠는 자신의 시대를 길이 남기기 위해 과거의 전통적인 건축물을 모두 파괴하려 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차우체스쿠는 부카레스트 중심부의 5분의 1이나 되는 지역을 불도저를 동원해 파헤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서깊은 교회, 수도원, 묘소, 기념물, 박물관, 극장, 병원, 그리고 옛날집들이 대거 파괴됐습니다. 당시 우아스런 전통가옥이 1만 채나 파괴됐으며 그 때문에 4만여 명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그 당시 봄으로 기억되는데 어느날 저의 부모는 우리 고향의 가장 매력적인 동네도 철거 대상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동네 구경을 가자고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저에겐 '작은 파리'로 불리던 부카레스티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때였습니다. 사진기라도 있었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놨을텐데 지금도 아쉽습니다. 그 날 밤새껏 동네 전체가 불도저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몇백년 걸쳐서 세워진 역사와 문화가 한 독재자의 과대 망상증으로 인해 불과 몇시간만에 없어진 셈입니다.
독재자의 절대 권력은 부쿠레슈티 중심부에 거대한 대통령 궁전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고도 독재자는 그 궁전을 '인민관'으로 붙였습니다. 당시 독재자의 행정 본부와 '인민관'을 건축하기 위하여 무려 10만여 명이 동원됐습니다.
그러나 1989 년 12월에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뒤 차우체스쿠 행정센터도 종말을 맞게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 행정센터의 서쪽에서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동쪽 부분도 새롭게 단장 중입니다. 지금은 차우체스쿠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도 부쿠레슈티의 정체성의 일부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차우체스쿠 개인 숭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인민관'은 지금 루마니아 국회의사당 건물로 변했습니다. 반면 독재자와 그의 아내를 기념하는 건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묘지에 위치한 십자가 모양으로 된 비석이 있는 평범한 무덤뿐입니다.
차우체스쿠 독재시절 부쿠레슈티는 잔인한 파괴로 인해 순수한 매력의 모습을 영원히 잃었습니다. 때문에 부쿠레슈티의 옛날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루마니아 건축가, 예술 사학자와 시민들은 막대한 문화유산 파괴에 따른 고통을 아직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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