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은 주체사상과 개인 숭배, 그리고 평양의 웅장한 도로를 접한 뒤 크게 감탄했습니다. 귀국 후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쉬티를 평양처럼 대중이 모여 지도자를 숭배할 수 있는 도시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구상은 공산주의가 쇠퇴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80년대 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인권 유린, 식량 부족과 전력난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던 루마니아 국민은 소련이 와해될 조짐을 보이던 1989년말 마침내 반독재, 반공산주의를 내걸고 유혈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독재자 차우셰스쿠 대통령과 남편 위세를 등에 엎고 날뛰던 부인 엘레나도 군사 재판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시대에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와 북한의 가까운 관계는 루마니아 독재자이던 차우셰스쿠와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이 우정을 맺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루마니아 언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루마니아 간호사 2명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1950년대 루마니아는 소련의 군홧발에 짓밟힌 공산주의 독재 체제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부터 전쟁 이후 1957년까지 루마니아 적십자사는 같은 소련의 위성 국가이자 공산권 동맹국이던 북한으로 의사와 간호사 약 220명을 포함한 7개의 진료 팀을 파견했습니다.
루마니아 진료 팀이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파견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루마니아 언론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 명을 찾아 그들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엘레나 젤레뉵 (Elena Zeleniuc)과 이와나 크루챠누 (Ioana Cruceanu) 씨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 파견된 후 국제 적십자사가 수여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 (The Florence Nightingale Medal)을 수상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두 여성은 기자들과 한국전쟁의 추억을 나눴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왔던 젤레뉵과 크루챠누 씨는 먼 곳에 있는 아시아 나라까지 돌볼 기회가 생기자 아주 젊은 나이에 스스로 북한으로 갔습니다. 두 여성에 따르면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모두 지원자였습니다. 루마니아 진료 팀들은 본국에서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모스크바에서 중국과 북한 국경까지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로 갔습니다.
젤레뉵 씨와 크루챠누 씨는 한국전쟁의 고통과 파괴를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두 여성은 한국어는 몇 가지 정도 배웠지만, 북한 사람들과 하는 의사소통은 러시아 말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루마니아 간호사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17살 때 한반도에 도착한 엘레나 젤레뉵 씨는 유탄을 맞아 다리를 절단할 뻔했지만, 유럽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26세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루마니아 간호사를 구해준 그 젊은 의사는 전투를 하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부상을 입은 엘레나 젤레뉵 씨는 김일성 전 국가주석에게 훈장을 직접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한국전쟁의 정치적, 이념적 원인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은 정이 많았고, 서로 증오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에 관한 루마니아 사람의 의견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루마니아 독자의 의견을 인터넷 블로그로 보면 엘레나 젤레뉵 씨와 이와나 크루챠누 씨가 한 인터뷰가 일반 사람이 잘 모르는 역사를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과1950년대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인사 수만 명이 교도소와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루마니아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이럴 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북한으로 파견됐다 해도 사실 한반도를 분단시키면서 북한에 루마니아와 다른 소련 위성 국가처럼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는 자체가 그다지 대우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같이 엇갈린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독자들은 루마니아에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국전쟁의 역사적인 의미를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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