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탄절과 같이 중요한 날입니다. 지금도 1990년의 부활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해 봄은 공산주의 독재가 무너진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뿐만 아니라, 루마니아의 온 국민이 '부활'한 것을 기뻐하며 기념했습니다. 지난 1500년동안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그 오랜 기간 루마니아 인들은 교회나 성당에서 기도 해 온 민족입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도 루마니아 사람들은 믿음과 종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교회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신자들에게 희망과 정의를 나타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에, 독재자들은 종교를 두려워했습니다. 소련의 경우 '공산주의 아버지'인 레닌 이래 모든 독재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일성 독재 체제와 비슷하던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 시대에도 공산당 간부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미신을 믿는 고집쟁이라며 의심했습니다. 비밀 경찰 밀고자가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신자는 항상 공산주의 간부들에게 비판을 당하고, 승진하지 못하고, 해고까지 당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부활절이면 어김없이 자정 미사를 드리려 항상 교회에 갔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저희 반에도 밀고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부활절 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담임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모든 학생들 앞에서 담임 선생님은 문제의 학생이 누구 누구라고 발표하곤 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태도 점수가 깎이고, 나중에 대학교 입학 시험을 볼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밀고자를 피해 교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자를 눌러 쓰고 점퍼의 깃을 올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행히도 단 한번도 담임 선생님 귀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기념 동창회 모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 시절엔 공산주의 법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들에게 사과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서로를 사과하고 용서했습니다. 남의 잘못을 사과하고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1990년 봄 루마니아 사람들은 45년만에 부활절을 다시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가 무너진 후 루마니아 사람들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밝은 미래의 꿈을 꿀 수 있었고, 교회에서는 신자들을 감시하는 밀고자들도 사라졌습니다. 또 독재자의 비밀 경찰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으며 가족들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도 성경과 관련된 영화를 볼 수 있으며 식량 부족난도 없어 부활절 음식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부활절의 추억이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그때가 고향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1990년 가을 한국유학 이후 지금까지 부활절을 한번도 루마니아에서 보낼 수 없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의 비극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오래 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북한의 수도인 평양도 남북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중의 하나였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믿음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자유와 종교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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